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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크캠프/설치 기록/김나영 개인 설치

개요

김나영, 〈작업실〉, 2026, 4일간의 작업 및 설치, 참여자들의 작업, 부산물과 재료, 가변크기

모크캠프 구성원 김나영의 개인 설치 연습.
예술 학교 전시 중 4일간 진행된다.

  • 기간: 2026. 09. 22 ~ 2026. 09. 26

작업실은…

작업의 제작과 설치 과정에서 남겨진 부산물을 그것이 비롯된 작업과 한자리에 놓는다. 부산물은 타인의 개입을 거쳐 새로운 작업의 재료로 작동한다.

제작과 설치 과정에서는 잘라낸 조각, 남은 재료, 임시로 사용한 물질, 테스트의 흔적과 여러 시도가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여한다. 특정한 상태가 완성된 작업으로 정리되면서 일부 요소는 남고, 일부는 제거되거나 작업의 범위 밖에 놓인다. 작업과 부산물의 구분은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선택, 완성을 판단하는 시점, 제작과 전시의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게 한 번 작업의 바깥으로 분류된 물질을 다시 제작 과정 안으로 가져온다. 부산물은 칠하거나 자르고, 다른 물질을 덧붙이거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재료로 주어진다. 부산물이 새로운 작업의 재료가 된 이후에도 선택과 제외는 계속된다.

참여자들은 정해진 순번 없이 각자의 시점에 개입한다. 모든 개입은 이전까지 변화한 상태를 조건으로 삼는다. 한 사람의 결정은 다른 참여자가 이후에 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를 바꾼다. 사용할 수 있는 면적과 형태가 달라지고, 일부 물질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앞선 선택을 유지하거나 제거하고, 이어가거나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일은 이후 참여자의 판단에 맡겨진다. 어떤 선택이 끝까지 남을지, 어떤 흔적이 개입에 의해 사라질지, 어느 결정이 이후의 제작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각자의 판단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판단이 이루어지는 조건은 타인의 선택과 분리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작업실》은 한 번 작업의 바깥에 놓였던 물질을 다시 작업의 조건으로 가져왔을 때 무엇이 남고 무엇이 다시 제외되는지, 타인의 선택이 개입한 뒤 이전의 구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 본다. 어떤 관계와 형태가 만들어질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서로의 선택은 서로의 조건이 될 것이다.

대화

김나영의 개인 설치 기간 동안 ‘대화’가 진행된다.
대화 주제는 매일 달라진다.

작업실 일지

김나영의 개인 설치 기간 동안 기록된 일지다.

1일차의 작업실

김자연의 메모
처음엔 보라색 페인트였다. 밑의 나영 그림이 아까워서 선택을 주저했고, 내가 살린 나영의 페인트를 누군가 침범했고, 나는 누군가를 침범했다. 결국 점점 통제 불가능하게 되었다.
두 번째엔 파란색을 섞어 지음의 잭슨 폴록을 잠재우고, 상희의 외계인 색을 잠재우려 했지만 이것 또한 계속 침범당했다.
세 번째. 전반적으로 톤 다운을 시키거나, 강하게 밀어내고 싶어서 블랙을 선택했다. 하지만 내가 덮으면 지음이가 다시 침범했다. 우리 둘의 색이 섞여서 내가 원하지 않은 색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다.

최지음의 메모
1차에는 흰색+검정(조금)+파랑을 섞어 색을 만들었다. 색이 마음에 들었다. 조색한 색으로 나영이 Hall1에서 그린 그림 위를 덮거나 그렸다. 기분이 묘했음. 나영의 그림에 있던 선, 면, 색 등에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면으로 면적이 나뉜 부분들을 칠했다. 또는 붓으로 튀겨가며 점(?)들을 많이 만들었다.
2차에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칠한 부분을 덧칠하거나, 나를 못 움직이게 가두거나… 통제 했다. 그래서 나도 상희, 현령, 자연의 부분들을 침범하게 되었다. 나영이 나를 통제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림 위에서 걸어다니며 자유롭게 칠했다.
3차에는 자연과 나영이 만든 면을 침범하고, 헤라로 그림을 긁었다. 긁어서 1차에서 칠한 색이나 나영의 기존 그림이 위로 올라와서 좋았다. 왜일까…?

천현령의 메모
기존의 나영 작업에 있는 선들을 분홍색 선으로 덮었다. 모서리에 분홍 면 칠한 부분을 자연이 파랑으로 덮어서, 반대편 모서리에 있는 자연의 보라면을 나도 덮어서 칠했다.

2일차의 작업실

대화에 대하여

참여자들이 각자 가져온 부산물을 꺼내 놓고, 그것이 어떤 작업에서 발생했으며 왜 지금까지 남아 있었는지에 대해 대화를 진행했다. 같은 ‘부산물’로 가져온 것들이었지만, 각각이 작업의 바깥에 놓이게 된 과정은 달랐다.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은 것이 있었고, 설치 과정에서 사용한 뒤 역할을 다한 물질도 있었다. 어떤 것은 여러 시도 가운데 최종적으로 선택되지 않았다. 이것들은 하나로 묶이기보다, 작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판단과 조건에 의해 작업의 범위 밖에 놓인 것들에 가까웠다.

대화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이언제, 최지음, 이상희가 가져온 부산물에 대한 선택이 대화 전후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언제와 상희는 그것이 왜 남아있었는지 설명하고 다른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너무 소중해져 버렸다”며 실제 개입에 사용하지 않고 다시 가져갔다. 지음 역시 버리기 귀찮아 쌓아두었던 석고 조각을 가져오고 그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이전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부산물로 분류된 물질이 다시 선택되고 설명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일까? 그 물질이 어디에서 왔고 왜 남아 있었는지를 말하는 과정에서 관계성을 다시 확인해 보니, 결과적으로 일부 물질은 실제 개입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부산물을 가져온다’는 것 자체는 이미 새로운 선택을 포함하고 있다. 작업실에 남아 있는 여러 부산물 가운데 특정한 하나를 고르고, 사람들 앞에 놓고, 그것의 내력을 설명하는 동안 물질의 형태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후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의 범위는 달라진다.

제외하고, 다시 골라 가져오고, 설명하고, 다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물질의 위치는 계속 조정되었다.

3일차의 작업실

부산물이 다시 제작의 재료가 된 이후에도 이전과 같은 부산물로 느껴지는지, 그리고 앞선 선택들이 이후의 작업에 어떤 조건을 만들었는지를 중심으로 대화를 진행했다. 대화를 시작할 때는 ‘부산물의 재분류’를 확인하는 것이 주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부산물의 분류보다 참여자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반응하며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있는지가 더 크게 드러났다.

첫날에는 내가 기존에 작업했던 평판의 상태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참여자들도 화면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비교적 신중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개입이 누적되면서 다른 사람의 흔적뿐 아니라 그 흔적을 만들고 있는 사람의 행동과 의도가 더 강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천현령은 누군가 하나의 선택을 지속할수록 그 사람의 의도가 보였고, 오히려 그것을 더 덮거나 다른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이언제 역시 처음에는 화면을 보고 자신이 무엇을 남기고 지울지 결정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화면보다 서로의 행동에 더 많이 반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선택은 조형적인 판단뿐 아니라 경쟁과 협동, 놀이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누군가 특정한 색을 계속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덮으려 했고, 다시 다른 개입이 그 위를 바꾸었다. 박주연은 이때부터 “행위만 남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어떤 화면을 만드는가보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순간들이 생겼다.

평판을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이언제는 평판을 그림으로 생각했다면 부산물을 어디에 놓을지 더 고민했을 것 같지만, 밟고 이동할 수 있는 바닥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걸어 다니며 연속적으로 붙였다고 말했다. 박주연 역시 전체의 조형을 판단하기보다 자신이 어디까지 움직이며 실을 놓을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16개의 평판 전체를 하나의 화면으로 바라보는 방식보다 가까이에 있는 흔적과 몸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방식이 점차 강해졌다.

이 지점에서 처음 계획했던 ‘조건’과 실제로 작동한 조건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나는 16개의 평판 전체가 하나의 상태를 이루고, 각자가 앞선 사람들의 선택으로 달라진 전체를 고려하며 다음 행동을 이어가는 상황을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까이에 있는 흔적, 다른 사람의 행동과 의도,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더 직접적인 조건이 되기도 했다. ‘타인의 선택이 다음 사람의 조건이 된다’는 구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상보다 강하게 작동했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조형적이고 전체적인 조건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적이고 국소적인 조건의 비중이 커졌다. 전체 화면을 하나의 단위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개입의 범위나 순서, 바라보는 거리까지 구체적으로 설계했어야 하는 부분이라고도 느낀다.

오늘 확인한 것은 조건이 처음부터 하나의 형태로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16개의 평판 전체와 그 위에 누적되는 것을 참여자들이 함께 마주하는 조건으로 설정했다. 앞선 사람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웠는지가 다음 사람의 선택 범위를 바꿀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참여자들이 반응한 것은 이와 같다: 누군가 같은 색을 계속 칠하고 있다는 사실, 어떤 면을 지키려 한다는 의도, 옆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 지금 내 몸이 닿을 수 있는 범위. 순간 발생하는 행동도 다음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
이 때 타인의 선택이 반드시 흔적의 형태로 남아 있어야만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흔적이 다른 사람에 의해 완전히 덮인 뒤에도, 그것을 덮게 만든 앞선 행동은 다음 행동의 이유로 남아 있었다. 반대로 눈앞에 물질적인 흔적이 남아 있어도 그것을 더 이상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다면 조건은 이전의 선택이 이후의 행동을 가능하게 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관계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서로의 선택은 서로의 조건이 되었다’는 문장도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복잡해진다. 한 사람의 선택은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유지하거나, 지우거나, 오히려 그 의도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 같은 선택도 다음 사람에게는 제한이 될 수 있고, 새로운 행동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경쟁과 협동, 놀이 역시 별개의 현상이라기보다 하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조건은 미리 설정해 둔 규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조건 자체가 자율성이 커서 그랬을 수도 있다.) 평판의 크기와 배치, 이미 남은 흔적, 타인의 의도와 행동이 서로 겹치면서 조건이 다시 형성되었다. 서로의 선택은 서로의 조건이 되었다(고 아직까지 생각한다.) 무엇이 조건으로 받아들여질지와, 그 조건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가 계속 달라졌을 뿐이다.

4일차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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