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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동료로써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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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주: 박이소 작가의 도록을 예랑이 보여줬는데 좋았다, 커리큘럼대로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구전과 같은 선배 작가들의 느슨한 연대가 흥미롭다. 강석호 선생님을 포함, 이런 말들이 성장의 지침이 되는 것 같다.
김지원: 그림이 기술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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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 그림이 태도가 되는 것이 좋지만, 기술의 극도 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태도라는 단어가 추상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이채원: 행복반 멤버들이 작업을 보여드리면 쓴 소리도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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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안한다. 작업도 내가 직접 가서 본다.
노해나: 박이소 작가의 사디에도 특강을 가셨다고 하는데, 그는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교육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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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정확히 모른다. 강의 계획서는 국현에서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드로잉으로 기술이 되어 있는데, 많은 규칙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이 꼭 교육으로 되는지 모르겠지만, 해당 내용이 지금 시각에선 꽤 보편화가 된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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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나: 교육자이시기도 한데,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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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드로잉 이야기는 꼭 하는 편이다. 까불지 말고, 끊임 없이 하라는 소리다. 드로잉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한다. 제발 해라~ 드로잉이 있으면 작업의 알리바이가 넓어진다 생각한다. 시각적으로 증명이 되는 부분. 안젤름 키퍼가 책 위에 드로잉을 한 것이 있다. 2차 대전과 관련한 것이다. 흥미롭게 보았고, 학생들에게도 같이 해보자 권했다. (선생님 드로잉 보여주심) 나도 했다. 학생들에게 해보라고 하는 건 나도 해본다. 같이, 보여주기도 하고.
함성주: 작업을 하며 힘들었던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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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독일에 있었을 때가 아닌 가 싶다. 작업 때문에 힘들었던 건. 한국에선 상황과 사람간의 공감대가 있는데, 독일에서는 스스로도 독일을 모르면서 사람들을 설득해야했다. 정보도 지금보다 없어서 힘들었다. 머리는 한국에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향수병. 당시에는 작업실에 12시간을 있어도 헤맸다. 그런데 그림은 헤매도 그려야한다. 그 수밖에 없다. 어려워도 ‘그냥’이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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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랑: 저도 너무 그림을 헤매서, 억지로라도 습관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행복반이 만난 것 같다.
함성주: 놀이터가 필요하다 하셨다. 작업의 프로세스는 확장기와 수렴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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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미리 보내준 질문지에 [드로잉에 임할 때 감성, 이성 중 무엇이 먼저 선생님께 다가옵니까?] 이런 질문이 있었다. 작업은 의식적으로 하는 것 같다. 처음엔 감성으로 시작했어도, 이성의 개인이 필요하다. 전시로 구체화시키기 위해선 필연적이다. 어떤 결과로 갈 때 하기 싫어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한다. 보여주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고. 나의 경우 마인드 매핑을 하곤 한다. 가운데 내가 있고 그 시기에 나를 둘러싼 지점들을 도식화 하는 것. 마지막 원에는 ‘회화’가 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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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주: 객관적인 위치를 인지해야 한다는 말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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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사람마다 방법은 다르다. 각자의 챕터가 있고, 거기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챕터들이 섞이기도 하는데, 비빔밥처럼 섞어 그리다가 이후에 분류를 하기도 한다. 내 그림의 경우 크게 보면 ‘일상‘이라 생각된다.
라미연: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것 넘어, 작업실 밖으로 작품이 갈 때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본인 작업에 확실은 하는지? 본인은 전시할 때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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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감성에서 출발하더라도 진행 과정에서 이성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말과 맞물릴 것 같다.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고, 경계 역시 필요하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았으면 한다. 기록이 되고 지울 수도 없다. 나 역시 후회하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라미연: 후배 작가/학생들의 오프닝에 많이 와주시는데 힘들진 않으신지?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에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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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다 가진 못한다. 힘들면 하겠는가. 좋으니 하는 것이다. 강요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건, 너무 관계가 있는 작가들의 전시만 가는, 편식하는 것이 아닌가 경계된다. 하지만 요즘 공간도 전시도 너무 많아져 물리적으로 다 보는게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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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주: 선생님의 활동시작 후 10년차쯤의 고민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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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첫 개인전을 결혼식을 한 날 오픈했다. 낮에 결혼하고 저녁에 오프닝을 한 것이다. 그러고 1달 뒤 독일에 갔다. 10년 뒤라 하면, 안성 작업실을 쓰던 시기다. 정물화, 비슷한 벽 똑같은 벽, 무거운 그림 무거운 풍경 등의 연작을 동시에 진행하던 시기다. 당시의 나는 상당히 여러 가지를 해봤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았고 그 ‘여러 가지’가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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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주: 여러 가지 해보라는 이야기, 젊을 때 많이 크게 그리라는 조언을 듣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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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작업이 많아야한다. 본인도 언젠가는 작은 그림(4호)과 큰 그림(150호)를 왔다갔다 하며 그린 시기가 있었다. 큰 이유는 없고 그냥. 그런데 그게 나중에 개념이 되더라. 작업 노트도 많이 쓰면 좋겠다. 본인도 전시마다 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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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주: 드로잉이 일기, 근거, 알레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드로잉은 기록인지 작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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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작업이면서도 기록이다. 열하일기를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기록에서도 드로잉 같다 느끼는 지점이 있다. 타 예술 장르, 예를 들어 영화를 ‘미술’로 바꿔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발견한다. 드로잉이 전부 회화가 된다는 개념은 아니고, 오히려 습관처럼 그냥 그때의 생각, 그날의 것, 눈앞의 모습을 기록한다. 그래서 날짜를 써놓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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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나: 드로잉을 강조하는 게 화가로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운동과도 같은 최소 단위의 미술 실천으로 생각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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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내겐 드로잉이 너무 자연스럽고 습관 같아서, tv를 보면서도 그리곤 한다.
함성주: 저희도 작업하다 보면 ‘이걸 계속해도 되나’ 싶은 순간이 자주 오는데요. 선생님은 작업을 오래 지속하면서 그런 순간을 어떻게 넘어오셨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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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감정에서 시작해서 이성을 개입시키며 진행하는, 앞전의 이야기와 맞물린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평온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김승규: 전시는 왜 해야하는가? 자기 만족의 영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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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자기만족도 있을 것이다. 왜 말고 다른 지점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임지현: 올해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작년 그림이 맘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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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작년보다 나아졌다는 반증 아닐까.
황예랑: 책을 추천 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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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김용원 아트 컬렉션. 최근 재밌게 읽었다. 컬렉팅의 기준이 굉장히 넓다. 열하일기도 다시 읽어보려 하고.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마오쩌뚱 평전인데, 마오쩌뚱을 차치하고 에드가 스노우라는 필자에 대한 대단함에 추천한다. 그 옛날 글을 쓰기 위해 중국에 갔던 불굴의 의지가 마치 작업하는 것 같다 느꼈다. 드로잉 같고. 그런 맥락에서 평전을 즐겨 읽는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추적. 나는 걷는다 라는 책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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