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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지원 작가와의 인터뷰 전문(녹취록 기반) 20260429
− 2. 김지원 작가에게 질문한 내용 20260428
− 3. 김지원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드리며 보낸 글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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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지원 작가와의 인터뷰 전문(녹취록 기반) 20260429
− 참여자: 김지원, 행복반(고경호, 김승규, 라미연, 임지현, 함성주, 황예랑), 노해나, 이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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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해나: <예술 학교> 기획은 인미공 폐쇄 이후 교육적 역할과 신진 작가 발굴 등의 기능을 모색해보며 기획. 제도 밖의 현장에서 스스로 배움을 조직하는 콜렉티브, 그룹 등을 소개한다. ‘행복반’의 신작 제작 차원에서 김지원 선생님을 초대하며 대화를 나누려 한다. 서치해보니 2023년을 기점으로 작은 그룹/공간들이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어떠한 상황적 변화가 있고, 코로나 이후의 변화된 지형과 변모한 미술 현장 등의 반영으로 느꼈다. 포스트 펜데믹 이후 각자도생 혹은 개인화의 경향이 각자의 느슨한 연대로 이어진다고 본다. ‘교육/배움’이라는 키워드가 창작 안에서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이는 위계가 없는 교육 차원에서 관계/공동 창작을 모색해보는 것. 김지원 선생님도 후배 작가들과 교류를 하시며 행복반의 두 번째 전시에도 영향을 주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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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행복반과는 신제 가르쳤던 학생도 있고, 오며가며 안부를 물었던 사람들도 있다. 행복반이 박이소 작가의 커리큘럼을 따라 조직되고, 첫 전시에 레퍼런스 삼았다 들었다. 박이소 작가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현재 계신 분이 아니니 조심스럽다. 그가 실화 되는 부분에 대한 염려도 있다. 내가 함께 소개될 만큼 깊은 관계였나?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인상적인 선배 작가이다. 박이소 작가와 연관된 혹은 그를 생각하며 그림들이 있다. 예전 안성 작업실 시절, 어느 날 밤 월간미술 한편에 우표만한 사이즈로 ‘미래를 설계하는 책상’이라는 드로잉이 실린 걸 봤다. 부실한 스티로폼 책상에 부실한 불빛 등. 그걸 보고 박이소 작가에게 전화 걸어 이걸 그려봐도 되겠냐 물어봤다. 팔리면 돈은 반반으로 나누자고. 당시 정물화를 그리고 있기도 해서, 120호 사이즈로 그렸다. <생각-박이소 그림-김지원>이라 캡션에 적었다. 그와 관련된 이런 저런 일화를 글로 적은 ‘그냥 풀과 째즈’를 공유한다.(이후 관련 대화는 글에 소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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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지현: 동료로써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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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박이소 작가의 도록을 예랑이 보여줬는데 좋았다, 커리큘럼대로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구전과 같은 선배 작가들의 느슨한 연대가 흥미롭다. 강석호 선생님을 포함, 이런 말들이 성장의 지침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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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태도가 전부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관계를 이어가고, 지나면서 느낄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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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지현: 어떤 태도일까요? 태도라는 단어가 추상적이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 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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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그림이 기술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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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규: 그림이 태도가 되는 것이 좋지만, 기술의 극도 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태도라는 단어가 추상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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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작업이라는 것이 폭넓은 뉘앙스를 품는다. 박이소 작가의 정직성 노래를 들어보면, 노래방에서 혼자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 것 같은데, 그의 작업과 닮아있다. 뉴욕 유학 시절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보아도, 창작을 위해 바보 같이 진지하게 살았구나 싶다. 결국 태도라는 것도 그림을 어떻게 대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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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해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박이소 작가를 다뤘던 그간 추모 방식이 큰, 신화화의 맥락이라면 이런 소소한 작은 상황 속에서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른 맥락으로 보인다. 큰 우려는 안하셔도 될 것 같다. 정물화 작업을 박이소 작가도 보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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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아마 보았을 것이다. 코멘트를 듣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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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예전엔 그룹전이 많았다. 이전의 현실과 발언, 임술년 등의 동인전을 그 예다. 본인도 제도권 밖의 <확산>이란 전시를 5-6번 진행했다. 군 제대 이후 해체했지만. 당시에 전시를 진행하던 방식은, 젊은 패기의 독선도 있었다. 행복반은 어떤가 궁금하다. 시대는 너무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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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저는 배운 풍토가 응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이게 활동으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그런 분이 계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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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없지 않았을 것이다. 성완경 선생님과 가까웠다. 철 없을 때 선생님께 질문도 많이 하고, 컨펌도 받았다. 첫 개인전도 선생님께 부탁드려 인천 여관에서 글을 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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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당시 민중미술 / 미술 동인전 정말 많았다. 젊은 의식전과 같은 선배 세대의 전시도 있었고. 본인은 형상미술을 이야기하며 민중미술과의 차별을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흡수된 듯하다. <확산>은 확산 시키자는 의미였다. 81-6년 정도 까지 진행했는데, 시대 분위기가 그랬고. 폭력적 시대였다. 기록이 되지 않는 많은 그룹이 당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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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원: 행복반 멤버들이 작업을 보여드리면 쓴 소리도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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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안한다. 작업도 내가 직접 가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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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해나: 박이소 작가의 사디에도 특강을 가셨다고 하는데, 그는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교육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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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정확히 모른다. 강의 계획서는 국현에서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드로잉으로 기술이 되어 있는데, 많은 규칙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이 꼭 교육으로 되는지 모르겠지만, 해당 내용이 지금 시각에선 꽤 보편화가 된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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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해나: 교육자이시기도 한데,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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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드로잉 이야기는 꼭 하는 편이다. 까불지 말고, 끊임 없이 하라는 소리다. 드로잉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한다. 제발 해라~ 드로잉이 있으면 작업의 알리바이가 넓어진다 생각한다. 시각적으로 증명이 되는 부분. 안젤름 키퍼가 책 위에 드로잉을 한 것이 있다. 2차 대전과 관련한 것이다. 흥미롭게 보았고, 학생들에게도 같이 해보자 권했다. (선생님 드로잉 보여주심) 나도 했다. 학생들에게 해보라고 하는 건 나도 해본다. 같이, 보여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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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작업을 하며 힘들었던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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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독일에 있었을 때가 아닌 가 싶다. 작업 때문에 힘들었던 건. 한국에선 상황과 사람간의 공감대가 있는데, 독일에서는 스스로도 독일을 모르면서 사람들을 설득해야했다. 정보도 지금보다 없어서 힘들었다. 머리는 한국에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향수병. 당시에는 작업실에 12시간을 있어도 헤맸다. 그런데 그림은 헤매도 그려야한다. 그 수밖에 없다. 어려워도 ‘그냥’이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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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예랑: 저도 너무 그림을 헤매서, 억지로라도 습관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행복반이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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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놀이터가 필요하다 하셨다. 작업의 프로세스는 확장기와 수렴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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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미리 보내준 질문지에 [드로잉에 임할 때 감성, 이성 중 무엇이 먼저 선생님께 다가옵니까?] 이런 질문이 있었다. 작업은 의식적으로 하는 것 같다. 처음엔 감성으로 시작했어도, 이성의 개인이 필요하다. 전시로 구체화시키기 위해선 필연적이다. 어떤 결과로 갈 때 하기 싫어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한다. 보여주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고. 나의 경우 마인드 매핑을 하곤 한다. 가운데 내가 있고 그 시기에 나를 둘러싼 지점들을 도식화 하는 것. 마지막 원에는 ‘회화’가 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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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객관적인 위치를 인지해야 한다는 말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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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사람마다 방법은 다르다. 각자의 챕터가 있고, 거기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챕터들이 섞이기도 하는데, 비빔밥처럼 섞어 그리다가 이후에 분류를 하기도 한다. 내 그림의 경우 크게 보면 ‘일상‘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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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미연: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것 넘어, 작업실 밖으로 작품이 갈 때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본인 작업에 확실은 하는지? 본인은 전시할 때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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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감성에서 출발하더라도 진행 과정에서 이성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말과 맞물릴 것 같다.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고, 경계 역시 필요하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았으면 한다. 기록이 되고 지울 수도 없다. 나 역시 후회하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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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미연: 후배 작가/학생들의 오프닝에 많이 와주시는데 힘들진 않으신지?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에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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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다 가진 못한다. 힘들면 하겠는가. 좋으니 하는 것이다. 강요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건, 너무 관계가 있는 작가들의 전시만 가는, 편식하는 것이 아닌가 경계된다. 하지만 요즘 공간도 전시도 너무 많아져 물리적으로 다 보는게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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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선생님의 활동시작 후 10년차쯤의 고민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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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첫 개인전을 결혼식을 한 날 오픈했다. 낮에 결혼하고 저녁에 오프닝을 한 것이다. 그러고 1달 뒤 독일에 갔다. 10년 뒤라 하면, 안성 작업실을 쓰던 시기다. 정물화, 비슷한 벽 똑같은 벽, 무거운 그림 무거운 풍경 등의 연작을 동시에 진행하던 시기다. 당시의 나는 상당히 여러 가지를 해봤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았고 그 ‘여러 가지’가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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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여러 가지 해보라는 이야기, 젊을 때 많이 크게 그리라는 조언을 듣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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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작업이 많아야한다. 본인도 언젠가는 작은 그림(4호)과 큰 그림(150호)를 왔다갔다 하며 그린 시기가 있었다. 큰 이유는 없고 그냥. 그런데 그게 나중에 개념이 되더라. 작업 노트도 많이 쓰면 좋겠다. 본인도 전시마다 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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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드로잉이 일기, 근거, 알레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드로잉은 기록인지 작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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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작업이면서도 기록이다. 열하일기를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기록에서도 드로잉 같다 느끼는 지점이 있다. 타 예술 장르, 예를 들어 영화를 ‘미술’로 바꿔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발견한다. 드로잉이 전부 회화가 된다는 개념은 아니고, 오히려 습관처럼 그냥 그때의 생각, 그날의 것, 눈앞의 모습을 기록한다. 그래서 날짜를 써놓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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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해나: 드로잉을 강조하는 게 화가로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운동과도 같은 최소 단위의 미술 실천으로 생각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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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내겐 드로잉이 너무 자연스럽고 습관 같아서, tv를 보면서도 그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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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성주: 저희도 작업하다 보면 ‘이걸 계속해도 되나’ 싶은 순간이 자주 오는데요. 선생님은 작업을 오래 지속하면서 그런 순간을 어떻게 넘어오셨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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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감정에서 시작해서 이성을 개입시키며 진행하는, 앞전의 이야기와 맞물린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평온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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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규: 전시는 왜 해야하는가? 자기 만족의 영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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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자기만족도 있을 것이다. 왜 말고 다른 지점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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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지현: 올해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작년 그림이 맘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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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작년보다 나아졌다는 반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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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예랑: 책을 추천 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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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김용원 아트 컬렉션. 최근 재밌게 읽었다. 컬렉팅의 기준이 굉장히 넓다. 열하일기도 다시 읽어보려 하고.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마오쩌뚱 평전인데, 마오쩌뚱을 차치하고 에드가 스노우라는 필자에 대한 대단함에 추천한다. 그 옛날 글을 쓰기 위해 중국에 갔던 불굴의 의지가 마치 작업하는 것 같다 느꼈다. 드로잉 같고. 그런 맥락에서 평전을 즐겨 읽는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추적. 나는 걷는다 라는 책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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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질문이 있는데, 김용원 아트 컬렉션 중 천부경(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이 나온다. 일시무시일. 시작도 없이 시작 되었다 라는 뜻이다. 여러분도 시작한지 모르게 시작된 것이다. 빠져나올 수 있는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후퇴 없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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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지원 작가에게 질문한 내용 20260428
− 선생님 안녕하세요. 행복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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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는 행복반이 진행, 큐레이터님들은 참관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저희가 궁금한 질문들을 모아보았는데, 선생님께서도 미리 읽어보시면 생각 정리가 되시지 않을 까 싶어 정리하여 전달 드립니다. 가벼운 대화 형식이 될 테니, ‘이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구나’ 정도로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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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말씀 드렸듯, ‘동료 되기’, ‘명랑한 작업/드로잉과 회화’, ‘기타’ 총 세 카테고리로 추려 정리하였습니다. 그럼 내일 3시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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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반 드림(고경호, 김승규, 라미연, 임지현, 함성주, 황예랑)
− ○ 동료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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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께서 박이소 작가와 교류하셨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가 사이의 관계가 작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관계 속에서 실제로 바뀌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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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는 서로 드로잉을 보면서 조금씩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에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동료’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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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10년차를 향해 가고 있는 작가들의 모임인데 종종 시기별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선생님이자 선배님으로서 저희들의 10년차에게 해주실 수 있는 충고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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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랑한 작업/드로잉과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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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가 드로잉을 매일 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게 작업인지 그냥 기록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께는 드로잉이 작업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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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로잉을 계속하다 보면 이게 회화로 이어지는 건지, 따로 노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선생님은 드로잉과 회화가 어떻게 연결된다고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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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로잉에 임할 때 감성, 이성 중 무엇이 먼저 선생님께 다가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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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로잉을 일상에서 매번 채집을 시도 하시나요 아니면 그리게 될 수밖에 없나요? 무언가를 보고, 외부의 것을 보면서 저걸 그려야겠다.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시나요? 다른 말로는 그릴 것이 생기면 (무슨 생각이나 상상 혹은 공상, 어떠한 상, 그릴 외부의 사물, 인물) 어떠한 사고 과정으로 드로잉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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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도 작업하다 보면 ‘이걸 계속해도 되나’ 싶은 순간이 자주 오는데요. 선생님은 작업을 오래 지속하면서 그런 순간을 어떻게 넘어오셨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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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 시간 작업하시며 언제 가장 힘드셨습니까. 어떻게 극복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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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에게는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말이 저희한테는 꽤 크게 남아 있었어요. 선생님은 작업하면서 그 ‘놀이터’를 어떻게 만들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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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저희처럼 계속 작업을 이어가려는 작가들에게 ‘이건 그냥 계속 가져가도 된다’ 싶은 태도가 있다면 어떤 걸 남겨주고 싶으신지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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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 대부분 학생들이 자신의 작업, 더 나아가 미술이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지 확신을 갖지 못해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선생님에게 그리기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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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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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와 작업이 분리될 때 진짜 작업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모두가 할 수 있는 작업 말고 너만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라고 합니다. 소위 진정성이라는 것도 여기서 출발하는 거겠지요. 이 둘은 얼핏 보면 상충된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적절한 접점을 찾는게 졸업 후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들의 숙명인 듯 싶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은 이 경계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다만 드로잉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회화에서 보다 규격화되고 형식화되는 지점이 있다고 보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페인팅 작업할 거리를 선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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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의 모든 제자들의 오프닝과 전시를 방문하시고 기회 될 때마다 오프닝 비용도 내주셨는데요. 정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신세져서 죄송함이 모두의 마음 한 편에 있을 겁니다. 학생들 챙기시는 거 힘드시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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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은 그림 그리면서 행복하신지요? 어디서 성취감을 얻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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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반 포함 제자들, 아득한 후배 작가들에게 딱 하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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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새 좋았던 책이 있으신가요? 선생님이 저희 나이대의 작가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으신 책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읽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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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아직도 루틴을 만드는 게 어려운데요. 선생님은 수업- 전시- 작업-일상의 루틴을 어떻게 소화하시는지 선생님의 하루 루틴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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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김지원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드리며 보낸 글 20260420
− 김지원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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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안녕하세요. 행복반입니다. 저희가 참여하는 전시와 관련하여 연락드리게 되어 설레는 마음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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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말씀을 드렸던 아르코 미술관의 8월 기획전시 《예술학교》와 관련하여 인터뷰 및 참여 요청을 드리고자합니다. 전시의 형태와 대략적 내용을 아래 설명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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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작 관련 개괄
− <행복반 Happy Drawing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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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용 및 개념 : 작업 - 관계 - 배움의 경계 없는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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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로잉 북(라운드 테이블)
− 2023년부터 시작된 드로잉 그룹 행복반의 3년 간 진행해온 실물 드로잉 북과 작업(회화 및 입체)을 전시한다. 행복반은 6명의 회화 작가(고경호, 김승규, 라미연(이준용), 임지현, 함성주, 황예랑)로 구성, 서로의 작업과 활동을 응원하고 지속할 수 있는 원동이 될 ‘관계적 성격’의 그룹이다. 각자 작업을 위해 하루 1장의 드로잉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모여 드로잉과 그간의 삶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참여 작가들의 삶과 작업, 이를 지속하는 시간과 닿아 있는 실물 드로잉 북을 제작된 테이블에 비치하여 관객이 직접 종이를 넘겨가며 관람하여, 보다 풍성한 전시 관람을 도모한다. 테이블 위에는 2025년 《화가의 놀이터》에 전시된 입체 작품을 함께 설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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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회화 작업(관계와 순환)
− 라운드 테이블 옆 벽면에는 6명의 회화 및 드로잉을 섞어 설치한다. 매일 수행되는 드로잉이 회화로, 회화가 다시 드로잉으로 변모하는 경계 없는 순환의 과정을 드러낸다. 출품작을 선정할 때 ‘동료의 리뷰’를 듣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포함하며 작품 선정 시 나누었던 대화의 기록, 작품 뒷면의 이야기, 근간의 드로잉 등을 매핑 형식으로 전시한다. 이를 통해 6명 작가 간의 관계/드로잉과 회화 작업 간의 관계 등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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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태도, 배움(박이소와 김지원)
− 행복반의 드로잉은 박이소 작가의 수업 커리큘럼을 레퍼런스 하여 진행, 1년간의 결과물을 2024년 전시 《Forgotten Realm》으로 소개했다. 이들은 해당 과정에서 드로잉 및 작업을 지속하는 선배 작가의 ‘태도’를 조명했다. 이후 2025년 《화가의 놀이터》에서는 김지원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주목하여 전시를 기획했다. 김지원 작가는 실제 행복반 구성원의 선생님으로서 이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보며, 본인과 박이소 작가의 과거 교류 관계를 이야기해준다. 행복반은 6명의 작가가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함과 동시에, 선배 작가의 작업적 태도를 적용하고 실천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이번 <행복반 Happy Class> 공간에 김지원, 박이소 작가가 교류했던 작업을 설치하여 선배 작가들의 관계/이를 따라가고 배우는 후배 작가들의 관계를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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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과 관련하여 선생님께 인터뷰 및 작품 대여를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작품 대여와 관련해서는 인터뷰 후 아르코 미술관 측과 논의 후(일정, 대여료 등) 구체적으로 말씀 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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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 나누고 싶은 대화는 크게 아래 두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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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료 되기
− 회화 작업은 작업실에 스스로 갇혀 벽을 바라보며 본인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강석호 선생님이 예전에 해주셨던 이야기) 이렇듯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하는 회화 작가들이 ‘교류’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회화 작업의 ‘지속’은 화면에도, 화면 밖에도 그 답이 있다. 이번 대화에서는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과 본인이 좋은 동료가 되기, 그리고 이 과정이 자신들의 작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행복반의 관계를 기반으로 선배 작가인 김지원 작가와 함께 이야기 나누려 한다. / 박이소 작가와의 일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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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랑한 작업/드로잉과 회화
− (김지원 선생님에 대하여) 러프하게 한국의 미술현장을 구분하자면, 학교, 관, 갤러리, 대안 공간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미술인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이 내용을 토대로 수행/거부 하며 작업을 이어간다. 여기서 ‘멘토’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스승, 어른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흔치 않은 일이다. 김지원은 실제 행복반 구성원의 선생님이었고, 활동을 하며 주요한 가르침을 주었다. 이론/기술적인 지점을 넘어 회화 작업을 지속하는 ‘명랑함’을 삶으로 보여준다. 2025년 행복반의 두 번째 전시 《화가의 놀이터》는 “화가에게는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그의 인터뷰 내용에서 기획을 출발하기도 했다. 행복반의 모임 취지 역시 각자의 작업을 ‘명랑하게’ 이어가기 위해 서로의 작업을 보고 대화하며 응원함에 있다. 작업의 최소 단위를 드로잉으로 상정, 작업의 근간이 되는 드로잉을 나누고 이야기하며 활동을 이어왔다. 김지원 작가 또한 수많은 드로잉을 하여 전시장에 선보인다.(pkm, oci) 이러한 드로잉 작업이 그 자체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동시에 회화 작업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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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주제 이외에도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전시 작업 및 설치의 아이디어와 깊이를 더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자세한 인터뷰 일정은 유선 및 메신저를 통해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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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행복반 드림.(고경호, 김승규, 라미연, 임지현, 함성주, 황예랑)
+ 내용 이전으로 인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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