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 설치
이상희와 최지음은 26년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각자의 작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채 서로의 작업과 작업의 사진, 크기, 크기 분류, 재료, 개수, 메인 키워드, 서브 키워드, 제작 연도로 구성된 인덱스를 함께 두고 설치를 진행하였다. 4일간의 설치 마지막 날, 둘의 설치와 작업에 대해 주고 받은 대화를 기록하였다.
대화록
상희 (02:05)
이번에 인덱스를 통해 서로의 설치를 사전 맥락이나 배경 없이 감각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해 보는 것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지음 (02:32)
제가 이번 작업 직전에 개인 설치를 먼저 진행했잖아요. 단체 설치를 하면서 그 차이를 느꼈던 것 같아요. 개인 작업을 할 때는 ‘시각적인 부분이나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작업의 맥락이나 간척지라는 장소와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집중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땅의 수평적인 요소를 수직으로 세워보거나, 수평적으로 묻어서 땅의 지형처럼 만들어보는 실험을 설치 단계에서 했었고요.
이번 전체 설치에서는 상희 님이랑 조율하면서 상희 님의 작업이 먼저 놓인 뒤 제 작업이 들어왔는데, 바닥 면에서는 작업 내용보다는···. 저도 상희 님의 작업을 실물로 처음 본 상태였으니까요.
지음 (04:13)
그런데 저도 놀랐던 게, 상희 님의 이미지와 제 조각 표면에서 밝게 느껴지는 지점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어요. 특히 이 작업에서요. 상희 님 작업이 바닥에 눕혀져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이미지로 먼저 놓여 있다 보니, 제 작업이 그 주변을 맴돌며 서 있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상희 님의 작업이 아까 해보셨던 것처럼 서 있었다면 느낌이 완전히 달랐을 거예요. 그랬다면 제 작업이 오히려 눕혀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희 (05:04)
이것 말씀하시는 거 맞아요? 아니면 저것인가요?
지음 (05:13)
그리고 아직 상희 님 작업의 내용적인 측면을 깊숙이 알지 못하는 상태라 순수하게 시각적으로만 느껴본 건데요. 제가 작업을 야외에서 작업할 때 주변에 이런 것들 많았거든요. 공사 현장이 주변에 많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 작업과 함께 놓였을 때 시각적으로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고 느꼈어요.
상희 (06:25)
그러면 이 작업의 키워드가 ‘이미지’와 ‘물성’인데, 제가 어떤 생각으로 설치했다고 생각하세요?
지음 (06:38)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상희 (06:40)
이 작업에 대해 지음 님이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아까 들려주셨잖아요.
지음 (06:51)
그냥 추측해 보는 거죠. 상희 님의 내용적인 부분은 일단 다른 분들이 제 작업을 아는 것보다 제가 훨씬 더 모르는 상태라고 생각했거든요.
지음 (07:10)
사전에 깊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러 생각없이 더 순수하게 보려 했던 점도 있어요.
재료 면에서 봤을 때는 파렛트에 이미지를 붙이고 사포로 표면을 갈아내신 것 같아요. 작업 과정을 상상해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왜 파렛트였을까’였어요. 파렛트는 무거운 자재를 지게차로 나를 때 쓰는 걸로만 주로 봐왔는데, 그 위에 이미지가 부착되어 있으니까요. 또 한눈에 봤을 때 어떤 이미지인지 명확히 파악하기 힘든 상태인데, 파렛트 구조의 틈새가 비어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요. 이미지 선택도 뭔가 탁월하신 것 같아요.
지음 (09:09)
처음에는 위성사진이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형의 흔적처럼 보였어요. 한편으로는 지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세로로 보았을 때 이 앵글로 촬영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마치 비누 조각의 표면이나 그 형상을 촬영하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지음 (10:14)
비누보다는 석고처럼 좀 더 단단하고 부피감 있게 제작된 덩어리가 깨져 있는 형상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상희 (10:42~10:45)
이렇게 하나씩 좁혀가면서 점점 더 알아가는 걸로 이야기해 봐요.
지음 (10:54)
맞아요, 눈에 보이는 직관적인 상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거니까요.
지음 (11:04)
그 점이 제일 궁금해요. 이미지를 직접 촬영하고, 출력해서 물질화된 이미지를 또 다른 물성을 가진 지지체에 부착하는 과정이요. 파렛트 형태도 제각각 다르잖아요. 그 과정에서 여러 선택이 있었을 텐데, 어떤 선택들이 조합되어 지금의 작업 형태로 완성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져요.
지음 (12:17)
이런 이야기를 오시는 다른 분들과도 함께 나눠보면 어떨까요? 지금 이렇게 바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네요…
-중략-
지음 (12:51)
이 작업은 형태를 가장 알아보기 힘든 이미지로 느껴져요. 대상을 극도로 확대한 것 같은데, 픽셀이 깨진 듯한 느낌도 들고 흐릿한 디지털적 잔상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지음 (13:26)
방금 전에 봤던 작업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상상으로 유추해 보면 구체적인 형상은 알 수 없지만, 작업이라기보다 어떤 ‘풍경’을 포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뭇가지 같은 요소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비닐로 덮여 있어서 대상이 더 모호해진 것 같기도 해요.
지음 (14:14~14:40)
계속 상상을 자극해서 볼수록 질문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정답을 점점 더 알고 싶어지네요.
이 작업은 이미지가 가장 표면 위로 드러나 있고 분리된 부분 없이 놓여 있는 구조지만, 동시에 돌이나 바위, 바다의 질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마치 물속에서 렌즈를 위로 향해 찍은 것 같기도 하고요. 상희 님이 직접 촬영하신 건지, 어디서 바라봐야 하는 시점인지 시선이 정해져 있지 않아 표면적으로 많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지음 (16:06)
저쪽 각도에서 봤을 때는 잘 안 느껴졌는데, 여기서 바라보니 ‘빛과 그림자’라는 대비가 조금 더 또렷하게 인식되는 것 같아요.
지음 (16:20)
산의 능선 같기도 하고 멋있네요. 진짜 물이나 흙의 흔적 같기도 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 해석이 다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음 (16:56)
물속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찍은 듯한 느낌도 들어요.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가장 강하게 와닿는데, 확신할 수 있는 형상이 없어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이 이 작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 같아요.
지음 (17:31)
지금은 여섯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이 조각들이 하나로 붙어 있지 않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을 때는 또 인식되는 느낌이 달라질 것 같아요. 움푹 파인 지형 한가운데에 진짜 물이 고여 있고, 흙과 땅 같은 물질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형상처럼 보여요. 그리고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느낌이라는 점까지는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희 (18:18)
그렇군요!
지음 (18:27~19:03)
시각적으로 이 이미지가 주는 묘하고 모호한 뉘앙스가 참 좋습니다.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세 가지 연작을 나란히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상희 님이 의도하신 감각이 조금씩 체감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살짝 들었던 내용이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지우고 보려고 노력했거든요. 보통 이미지를 접할 때는 벽에 걸린 평면의 상태로 많이 마주하게 되는데, 이렇게 공간에 놓여 있으니 감각이 완전히 새롭네요.
지음 (17:31)
이게 지금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데, 붙어 있지 않고 뿔뿔이 흩어졌을 때는 인식되는 정도가 또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가운데가 움푹 파여서 진짜 물이 고여 있고, 흙과 땅 같은 게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 들고요. 빛과 그림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까지가 유추해 볼 수 있는 최대치인 것 같아요.
지음 (18:18)
아니면 어떡하죠? (웃음)
지음 (18:27)
시각적으로 이 이미지가 주는 약간의 오묘한 느낌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되나?’ 싶기도 한데요. 사전 정보가 없으니까 모르는 사람의 시선으로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같은 시리즈의 작업 세 가지를 보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상희 님의 의도가 조금씩 느껴져요.
지음 (19:03)
예전에 살짝 들었던 내용이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아니에요. 그때 들었던 건 진짜 다 잊어버리고 보려고 노력했거든요. 보통 이미지는 벽에 걸린 상태로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건 바닥에 눕혀져 있으니까 더 호기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무렇게나 막 뱉어보는 감상이지만요.
지음 (19:59)
이제 이어서 옆에 있는 다른 작업 쪽으로 가볼게요.
지음 (20:15)
이거 보고 누가 떡 같다고 했냐며 웃었는데, 진짜 떡이라는 표현이···.
지음 (20:26)
그냥 우리끼리 웃고 지나갔지만, 정말 떡처럼 말랑말랑한 질감이 만져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잖아요. 색감도 생각보다 되게 예쁘고요. 이미지로만 봤을 때는 흑백이라 그런지 훨씬 더 단단해 보였는데, 실물로 보니까 훨씬 더 흘러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좌대나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게 아니라 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으니 그런 느낌이 더 드는 것 같고요.
지음 (21:22)
그리고 이 비누와 같은 재료로 만든 사자 형상이 예전에는 없었잖아요. 이 형상들도 사자였다가 녹아내린 건지, 아니면 사자가 되기 전의 상태인 건지 여러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온전히 알아볼 수 있었던 사자라는 대상이었다가 형태가 무너져 내린 상태 같기도 하고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유한성’이라는 정보가 적혀 있긴 했지만요.
지음 (22:24)
그리고 이 작업은 어제 설치하는 과정도 다 지켜봤거든요. 그런데 가장 궁금했던 건, 다른 작업들은 다 바닥에 놓여 있는데 이 작업만 혼자 높은, 언제 스케일로 올라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지음 (22:57)
시선이 굉장히 높은 곳에 머무는 작업이에요. 다른 작업들과 달리 이건 ‘초(양초)’라는 물질성이 바로 인식되기도 하고요. 높은 곳에 위치해서 촛농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으니까요.
지음 (23:30)
이 작업의 키워드가 ‘시간’과 ‘크기’라고 들었는데, 크기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 가벽의 스케일과 흘러내리는 촛농의 관계가···. 작업을 이렇게 높은 벽에 설치하고, ‘초’라는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누 작업과도 서로 일맥상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유추해보게 돼요. 둘 다 시간에 따라 변하고 녹아내리는 유사한 물성이니까요.
지음 (25:42)
어디까지를 작업의 크기로 봐야 할지도 궁금해요. 촛농이 타고 흘러내려 닿는 곳까지가 작업의 사이즈일지, 아니면 이 가벽 전체의 크기일지, 혹은 매달려 있는 저 초 자체의 크기일지요.
상희 (26:24)
사전 정보 없이 이렇게 감상해 보니까 어떠세요?
지음 (26:42)
직접 말씀해 주세요!
상희 (26:45)
어떤 의도로 작업했는지 말씀드리자면, 이건 2023년에 처음 시도했던 작업인데요.
지음 (26:52)
네.
상희 (26:53)
저는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나 질문을 작업으로 풀어나가는 편이에요. 지금 데려온 작업을 하던 시기는, 이미지 자체의 불가해함이나 언어를 초과하는 영역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어요.
단순히 어떤 의미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용도로 이미지가 읽히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이미지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서, 이미지의 ‘물질적인 측면’에 집중해 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파렛트를 어떤 특별한 상징으로 선택했다기보다는, 무언가를 받치거나 축적되는 지지대 구조가 필요했던 거예요. 합판 같은 단순한 나무판에 이미지를 평면처럼 붙이거나 벽에 거는 방식 대신, 쌓아 올리는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파렛트를 활용하게 됐습니다.
상희 (28:22)
그 고민을 담아 선택한 사진이 바로 이 이미지예요. 완전히 바짝 말라버린 호수 같은 곳인데요. 바닥의 수분감이 전부 날아가서 쩍쩍 갈라져 있는 아주 넓은 시골 지형이에요. 거대한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인데, 그 황량한 곳에 뜬금없이 사자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더라고요. 그 낯선 생경함이 너무 이상하고 강렬해서 찍게 된 사진이었어요.
상희 (29:03)
제가 사자상을 직접 만든 게 아니라, 그곳에 원래 있던 걸 촬영한 거예요. 사자상 이미지와 이 비누 작업을 한 공간에 나란히 놓았어요. 사자상은 그 자체로 실재하는 3차원의 조각이잖아요. 저는 먼저 그 조각을 사진이라는 이미지로 담았는데 거기서 파생된 3차원의 물질로서의 대상을 다뤄보고자 하였어요.
‘이미지 속 대상을 어떻게 물질적 대상으로 전환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비누 조각을 떠올렸어요. 영구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야외 조각이 아니라, 비미술적인 외부 환경이나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모되고 사라질 수 있는 유한한 물질을 찾다 보니 비누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유토로 사진 속 사자상의 형상을 먼저 빚고, 몰드를 떠서 비누로 캐스팅한 작업입니다.
지음 (30:24)
아, 그럼 저 비누는 원래 온전한 사자 형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가 변한 상태인 건가요? 이게 먼저였군요.
상희 (30:37)
네, 두 작업은 그런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요. 당시에 이 작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이미지의 물질성을 더 온전히 실험해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어요.
지음 (30:51)
그래서 일부러 표면을 사포로 문지르셨군요.
상희 (30:54)
사포로 표면을 갈아내고 찢고 긁어내면서 물질과 형상이 서로 모호해지는 경계의 상태를 보여주려 했어요. 그런데 제작을 해보면서 이미지가 겹겹이 축적되어 드러나고, 그 밑에 또 다른 레이어가 층을 이루는 구조를 더 깊이 고민해봐야겠다고 느꼈죠.
그리고 옆에 있는 두 파렛트 작업 속 사진들은 디지털이 아니라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이에요. 초점 거리에 따라 어떤 부분은 선명하게 잡히고, 어떤 부분은 조금 더 블러 처리된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고요.
상희 (31:37)
숲에서 나무뿌리와 이끼가 뒤엉킨 장면이라 대상이 더 모호하게 잡혔어요. 그래서 이런 사진들을 지층처럼 쌓아 올려보는 방식을 구상했었죠. 메마른 호수 역시 지금은 메마른 땅이지만 과거에는 물이 가득했을 테고, 언젠가 다시 물이 차오를 수도 있잖아요. 대상 너머에 있는 시간의 지표를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보해두고 있던 작업들인데, 이번에는 겹쳐 쌓는 형태 대신 이렇게 이미지가 펼쳐지거나 겹에 쌓인 형태로 보이도록 변주해 보았습니다.
상희 (32:30)
결론적으로 이미지가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정보’로서 손쉽게 식별되는 형태로 지각되기보다는, 보는 사람의 인식이나 지각을 살짝 건드리고 낯설게 만드는 역할을 하길 바랐습니다.
지음 (32:46)
상희 님의 의도가 완벽하게 통했네요! 그럼 다음 작업도 너무 궁금한데요.
상희 (32:55)
이 작업도 제가 촬영한 건데요.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이쪽이 조금 더 크고 넓게 포착된 사진이었어요.
지음 (33:05)
특정한 장소가 있나요?
상희 (33:09)
여기도 이탈리아인데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음 님이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신 감상들이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됐어요. 관람객의 눈에 실제로 구체화되어 보이는 지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지속해서 점검하고 수정해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상희 (33:45)
저는 (지음 님이 저에 대해 아시는 것과 비교했을 때) 지음 님 개인설치를 통해 작업의 힌트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잖아요. 지음 님이 땅을 캐스팅한 작업인데, 그 작업이 내포하는 물질성이, 제 작업과 함께 놓였을 때 전시의 주제 같은 기획적인 층위에서 표면이나 땅에 대한 것으로만 남거나 어떤 도식으로 묶여 버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그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작업의 여러 맥락이 탈락된 상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형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과연 실제로 어떤 형태로 구현되어 서로의 작업이 부딪히고 만날지 그 점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상희 (34:32)
지음 님이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온 송도라는 장소도 시간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공간이잖아요. 지음 님 작업 안에서 캐스팅이라는 행위 역시 기억이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의 흔적을 현재나 미래 시점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고요. 그런데 석고는 제 비누 작업처럼 계속 변형되는 성질은 아니잖아요. 단단하게 굳으면서도 표면에 흙이 묻어 있고, 현실의 구체적인 물질들이 강력한 흔적으로 남아 있죠. 그래서 두 작업이 한 공간에서 마주쳤을 때 어떤 호흡이 일어날지 참 궁금했어요.
지음 (35:17)
정말 그렇네요.
상희 (36:47)
유리창 앞에서 특별한 외상 없이 기절해 있는 새들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들곤 하는데요.
상희 (37:03)
지음 님이 말씀해주셨던 송도의 건설 현장, 그리고 갯벌이 가까우니 철새들도 오가잖아요? 지난 개인 설치를 보았을 때, 도심 공간을 넘어 어떤 장소만의 특수한 환경 조건들을 작업을 통해 다루고 있다고 이해했어요.
상희 (37:34)
먹지를 활용한 글 작업이, 단순히 표면에 글이 보이도록 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손으로 꾹꾹 눌러 쓰면서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새기려 했던 시도로 보였어요. 압력과 힘에 기반해 새겨진 흔적이 주는 무언가가 있다 느꼈는데, 땅을 캐스팅하는 작업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순간의 신체적 행위와 텍스트의 내용이 구체적인 질감으로 드러나는 형식이라, 글씨 작업을 지난 설치 때부터 유심히 봤습니다.
지음 (38:23)
저도 다 듣고 나서 제 작업의 의도를 말씀드릴까요, 아니면 지금 바로 말씀드릴까요?
상희 (38:32)
조금만 더 덧붙여 볼게요.
상희 (38:37)
저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에 대해 조금 더 짚어보자면요.
지음 (38:39)
제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이미 깊이 짚어주셨어요. 사실 이 작업들이 ‘시간’이라는 개념 안에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까 상희 님이 그 지점을 짚어주셔서 놀랐어요.
상희 (39:27)
그런데 그 장소와 환경 속에서 관찰하고 기록하신 사진들이 무척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이번 설치에서 그 사진 기록들을 제외하신 이유가, 혹시 너무 단순한 아카이브처럼 보일까 봐 의도적으로 빼신 건가요?
지음 (39:44)
사진 말씀이시죠?
상희 (39:45)
네, 그리고 영상 작업도 지음 님의 제작 프로세스를 가볍게 보여주거나 일종의 스케치 같은 톤 중심의 영상으로 느껴졌는데, 그렇게 구성하신 의도가 궁금했어요.
지음 (40:08)
영상이 이번 공간 안에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인 거죠?
상희 (40:18)
네, 어떤 생각으로 배치하셨는지가 궁금했어요.
지음 (40:37)
그 영상부터 말씀드리자면, 제가 가져온 글, 조각, 영상 중에서 영상은 가장 마지막 단계에 제작한 작업이에요. 저는 하나의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이동할 때, 기존의 작업을 다른 언어로 다시 풀어낼 수 있는 접점이 생기면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 세 작업의 시작점이 된 건 ‘글’이었어요. 그럼 그 글 쪽으로 이동해서 말씀드려 볼까요?
지음 (41:43)
글은 재작년쯤 썼던 것 같아요. ‘4번 죽은 새’라는 글인데, 그 앞에 1, 2, 3번의 단락이 이어지는 전체 글의 제목은 젖은 땅 이었어요.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작성했던 글인데, 1·2·3번을 통해 제가 그 땅에서 느꼈던 모호한 감정들과 피부에 직접 닿는 축축한 감각들을 기록했어요. 그곳에 살면서 늘 마주하는 감각들이지만, 내면에서 맴도는 모호함을 어떤 형태로든 표출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니 4번의 짧은 글에 이르러 제가 그 땅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지가 명확하게 잡혔던 것 같아요.
지음 (43:03)
당시 제가 그 장소에서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일종의 죄책감이었어요. 땅의 축축한 물질성과 피부로 와닿는 감각들이 제 몸 안으로 너무 깊이 스며들었거든요. 하필 그때 글을 쓸 당시에 발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고 깁스를 한 상태였어요.
상희 (43:38)
아, 깁스를 하고 계셨군요.
지음 (43:40)
네, 실제로 육체적인 고통을 몸으로 고스란히 겪고 있던 시기였어요. 발의 피부가 찢어지고 다시 아물어가는 과정을 겪다 보니 감각들이 훨씬 예민하게 와닿았고, ‘내 몸의 상태가 지금 이 환경의 상태와 닮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 땅의 질감은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정말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거든요. 말라붙었다가도 다시 축축하게 젖어 들고, 단단하게 굳었다가도 다시 거칠게 갈라지는 순환을 무한히 반복해요. 그 땅을 보며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어요. 본래 바다였던 곳이라 원래는 땅이 아니었는데, 바다였던 자리에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경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개발을 위해 조성된 매립지 땅 위에서 그런 감각을 느끼고 있을 때, 실제로 바닥에 죽어 있는 새를 마주하면서 감정이 한 번에 터져 나왔어요.
지음 (45:07)
원래 이 글을 쓰기 전에는 평면 회화를 주로 작업했었어요.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바라보는 세계 속에서, 어딘가 옳지 않거나 어긋나 있다고 느껴지는 감각들을 글이나 입체적인 물질을 통한 미술 언어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지음 (45:36)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미술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이 들면서, 기존의 평면 회화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작업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시기에 이 글을 썼어요. 조각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시도하게 되었고요.
그런 생각들을 품고 주변 환경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많이 찍고 기록을 남겼어요. 제 내적인 경험이나 부상으로 다쳤던 사건도 영향을 주었지만, 무엇보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일들을 연이어 겪었거든요. 그런 상실을 마주하다 보니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고, 제가 머무는 간척지라는 공간을 전혀 다른 눈으로 응시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음 (46:48)
글을 쓰고 나서 조각으로 전환할 때도 조형 방식에 대해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단순히 ‘간척지’라는 물리적 장소만을 재현하려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소멸하고 변화하는 거시적인 흔적들을 포착하고 싶었거든요.
간척지는 존재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거대한 땅이지만, 바뀌기 이전의 흔적들이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어요. 땅속에 배어 있는 염분의 상태라든가, 틈새를 뚫고 올라오는 염생식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버려진 쓰레기들과 건설 폐기물 잔해들이 뒤엉켜 있는 빈터 같은 곳들이요. 그곳에 남아 있는 잔여물들을 제 손으로 직접 물질화된 흔적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석고는 너무 견고하고 단단하게 굳어버리는 재료잖아요. 그래서 가능한 한 외부의 흔적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었어요. 결과물은 석고 조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 수집한 흙을 섞고 점토를 묽게 개어 섞어 만든 것이에요. 작업 뒷면을 보시면 제 손으로 꾹꾹 누르고 눌러 담은 신체적 압력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지음 (48:37)
그래서 그런 시도였어요. 조각은 어떤 작은 흔적들을 기록하고, 세워서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고요. 영상도 마찬가지로 거창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간척지가 흙으로 덮여 조성된 매립지잖아요. 결국 ‘덮는다’는 매립의 방식과 맞닿아 있는 행위인데, 그 ‘덮는 행위’를 제 신체적 행위로 전환했을 때 다른 의미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스쳐 지나가듯 든 단순한 생각이었는데, 저에게 ‘덮는다’는 건 폭력이라기보다는 돌봄의 방식이었거든요. 이를테면 어릴 때 엄마나 할머니가 자고 있는 제게 이불을 덮어주던 기억처럼요. 대상을 감싸 안고 보살피는 행위로서의 ‘덮음’을 그 환경 안에서 시도해 보고 싶었고, 그렇게 무언가를 덮고 접는 행위 자체를 기록한 영상에 가까워요.
상희 (50:20)
개인 설치 때 막연하게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네요.
상희 (50:49)
말씀을 듣고 보니, 조각 뒷면에 남은 손의 압력과 흔적이 작품을 수직으로 세워 전시했을 때는 조명의 각도나 시선의 위치 때문에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전시 환경이라 조금 고민이 되셨을 것 같아요.
지음 (51:07)
맞아요. 순수하게 시각적으로만 보면 앞면과 뒷면이 나뉜 상태로 인식되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앞뒤의 구분이 아니라 이 덩어리 자체거든요. 그래서 앞뒤가 나뉘어 보이는 상태가 늘 고민거리예요.
그리고 제작 과정에서 생긴 갈라짐이나 깨짐도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어요. 석고에 현장의 흙과 여러 물질을 섞어 반죽하다 보니 건조 시간도 훨씬 오래 걸렸고, 틀에서 분리할 때 자체적으로 자연스럽게 깨져 나가는 형태가 되었죠. 색감이나 흙이 엉겨 붙은 정도도 그날 땅의 습도 상태에 따라 달랐어요. 습기가 많은 날에는 흙색이 훨씬 진하게 배어 나오고, 건조한 날에는 거의 묻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더라고요. 제작 과정 자체에서 그런 물질적 특성들을 새롭게 체득하게 된 것 같아요.
상희 (52:36)
갑자기 너무 웃음이 나와서요. (웃음) 작업하면서 실제로 느꼈던 생생한 감각들을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니까요. 계속 말씀해 주세요.
상희 (52:51)
‘덮는 행위’를 돌봄과 거시적인 폭력이라는 두 축으로 새롭게 발견해 내신 것처럼, 날씨에 따라 흙의 상태가 제각각 다르게 드러나고 표면을 덮기 위한 선택 속에서 지음 님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과정이네요. 이렇게 작업을 통해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하고 배워나가는 지점들이 재밌어요.
상희 (53:30)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다른 매체로 풀어낼 가능성이 보일 때 매체를 옮겨가신다고 하셨잖아요. 기존 매체로 고민을 다 담아낼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새로운 시도가 촉발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상희 (54:08)
저는 다루고자 하는 대상이나 질문이 생겼을 때, ‘이 생각을 풀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과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매체를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영상 작업을 많이 하지만 결국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이고요. 지음 님과 막연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태도가 어느 정도 접점이 있다고 느꼈어요. 같은 내용이라도 하나의 고정된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다르게 보이는 틈이 생기면 나의 주관을 밀어붙이기보다 고민을 통해 기민하게 반응하고 작업으로 연결하는 태도요.
지음 (55:05)
매체가 달라진다는 건, 생각이나 시선이 어느 한곳에 고정되지 않고 유연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중심이 되는 큰 생각은 단단히 쥐고 있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형태를 바꾸는 거죠. 그러다 보면 필요한 재료나 물성의 상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적합한 방법들을 결합하면서 물질로 구현하게 돼요. 설령 그게 비물질적인 형태일지라도요. 그래서 작업의 형태가 계속해서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희 (57:57)
재료나 물질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저는 그런 과정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오늘 처음에 제가 여쭤봤던 건, 리서치의 맥락이 물질성 뒤로 가려져 단순한 물질로만 환원되어 보일 때 작가로서 그 지점을 경계해야 하는 부분으로 고민하고 계시는지 궁금했어요.
지음 (58:31)
장소라는 배경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장소를 학술적으로 연구해서 구현한 작업이라기보다는 제 내적인 감정과 상태를 은유하는 장소로 바라본 것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글을 전시에 함께 놓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지음 (59:19)
단순히 ‘간척지’라는 지역 이야기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거시적으로 보면, 지금 우리 주변의 수많은 존재가 눈앞에서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잖아요. 제 경험에서는 그게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런 상실감과 시선이 계속 연결되다 보니, 그 땅을 직접 파내고 물질화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영상을 더 깊이 시도해 보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상실이라는 내밀한 정서와, 제가 응시하는 외부 환경의 장소성을 하나로 긴밀하게 결합해 보고 싶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상 매체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상희 (01:00:44)
그런데 저는 이번 영상이 지음 님이 현장에서 작업하는 전체 과정을 누군가 곁에서 스케치하듯 기록한 영상처럼 보였어요.
상희 (01:00:52)
직접 연출하거나 구도를 전부 통제하며 촬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음 (01:01:00)
맞아요, 저도 퍼포먼스를 해본 경험이 없고, 영상 매체를 깊이 다뤄본 적도 없다 보니까 작가 기록물처럼 담기게 된 것 같아요.
상희 (01:01:15)
매끈한 프로덕션을 추구하신 건 아니었군요.
상희 (01:01:51)
그래서 덮는 행위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태도가 담겨 있다는 묘사를 지음 님의 말을 통해 들었을 때, 그 내용이 핵심을 짚어주는 바로 다가왔어요. 과정을 설명적으로 줄줄이 나열하는 게 아니라, 콕 짚어내는 이미지나 응축된 언어로 제시해 줄 때 관객에게 감각을 통해 더 강한 울림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업들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처럼요.
지음 (01:02:58)
뭔가···.
지음 (01:02:59)
흥미롭네요.
상희 (01:03:01)
정말 재미있어요. 저도 너무 기쁘게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