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반, 《화가의 놀이터》, 2025.11.15.-12.6., 부피서울, 서울
전시서문
포기한 작업으로부터1)
김지현(미술 비평·전시 기획)
미술비평가 신혜영은 2010년대 이후 미술 생산장 내 열악한 구조와 외부의 선택과 원조를 기다리기보다 삶과 예술을 병행하며 홀로 서는 편을 택했던 새로운 행위자들에 주목했다.2)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동시대 미술의 제도적 기반(공모, 레지던시, 미술상, 갤러리 전속계약 등)은 창작의 자유보다 행정적 효율성과 지원 시스템의 공정성을 앞세우며 ‘선정-평가-결과’의 체계 안에 대부분의 미술가를 불안정한 예술 노동자이자 자기 브랜딩에 능한 자영업자로 위치시켰다. 정량화된 포트폴리오가 필요했고 수없이 공모에 지원하고 거듭 탈락하는 과정이 수반되었다. 지인 외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고작 일주일간의 전시에 수백만 원을 지불하는 대관 화랑이 마지막 선택지로 남아 있지만 비용이나 실리의 면에서 이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며, 사실상 지원금 없이는 작업도 전시도 불가능하기에 결국 매 공모 시즌마다 포트폴리오와 지원서를 준비하고 제출하지만 거기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일 년을 계획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동시대 미술가들은 굶어 죽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요만큼”이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야 했고, 주변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모이며 자연스럽게 연대가 형성되는 흐름이 생겨났다. 신혜영이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이라 명명했던 신생공간 주체를 포함해, 그 전후 다양한 목적과 지향을 가지고 활동했던 주로 콜렉티브로 유연하게 호명되어 온 예술가 모임이 그 자생적 실천 사례일 것이다. 2023년 시작된 드로잉 프로젝트 “행복반”은 미술 내 소그룹 활동이 표방했던 원대한 목표 대신 “가벼운 마음이었다.”(함성주)라는 말처럼 여섯 명의 작가―고경호, 김승규, 이준용, 임지현, 함성주, 황예랑―가 매달 한 번씩 모여 각자의 드로잉북을 공유하는 자리로 이어져왔다.
이런 점에서 “행복반”은 특정 이념이나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운 과거 소집단이나 제도적 대안을 탐색해 온 동시대 콜렉티브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2010년대 후반 미술 대학과 대학원 졸업생으로 예술 활동 외 생계 수단으로 비예술적 활동을 병행하거나 한 경험이 있고, 거주·창작·전시를 위해 고민해 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임대료가 저렴한 서울 시내 전역을 찾아다니며 고군분투했던 신생공간 주체들, 나아가 사회와 미술장에 문제의식을 갖고 현실에 개입해온 미술생산자 모임3)과 스스로의 생존 모색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남아 있다는 변함없는 사실을 공유한다. 이 위태로운 현장에서 행복반은 작업을 지속하기 위한 드로잉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를 함께 마련해 온 동인, 작가 공동체이다.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따분한 질문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견고한 믿음도 가질 수 없는 현실에서 동료는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원동력과 자기 믿음이 필요했고, 무력감이 많은 의지를 잃게”할 때, “삶을 두렵지 않게 하고, 창작하는 것에 손을 놓지 않게”(황예랑)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매일 작업실에 나가서 같은 일상을 사는 것”(함성주)이며 그 반복은 “작업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고 외로운 일“(고경호)임에도 불구하고 ”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 밥 먹고 저녁에 시간 되면 술도 마신다. 작업 이야기, 사는 이야기, 기쁜 이야기, 슬픈 이야기, 무언갈 공유하며“(황예랑) ”또 다른 일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함성주)으로 불안한 새벽 여명을 마주하는4) 고독하고 지난한 과정을 홀로 견디는 대신 손을 잡고 또다시 다음 달로 건너오게 한다.
나아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력으로서 이들은 서로 ”정성스레 보잘 것 없는 내 드로잉을 살펴봐 주며, 좋은 지점을 찾아“(임지현)주기도 하고, ”입체를 전공했다. 오랜 시간 그림에 무지했다. 티타늄 화이트를 이렇게 많이 섞어야 하는지도 몰랐다.“(이준용)는 배움과 ”모임원들이 내 그림이 좋다고 하니까, 의기양양해지려고“(김승규) 회복의 감각을 나누며 ”그리기“라는 궁극적인 일의 갈증을 함께 묻고 그 감각을 훈련하는 상호적인 연구의 과정 또한 함께한다. 행복반이라는 공동체의 유대는 그 어떤 이상주의적 출구도, 완결된 결론으로도 수렴하지 않는다. 다만 나날의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으로 나은 삶으로의 전환을 함께 꿈꾸며, 결국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
행복반의 두 번째 동인전 《화가의 놀이터》라는 제목은 “화가에게는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화가 김지원의 말5)에서 비롯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다고 비유하는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매체, 회화에 30여 년간 천착하며 작업 시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든다고 했다. 다양한 주제의 놀이터 사이에서 작가는 큰 캔버스에서 작은 캔버스로, 이 연작에서 다른 연작으로 이동하는 날마다의 작업을 수행하고, 그 여일함의 결실로 한 그림을 완성하고 또 다른 전시를 열 수 있다고 했다.6) 스승이자 선배 미술가 김지원의 이야기는 화가로서의 정체성, 조건에 골몰하던 이들에게 어떤 안도와 해방감을 주었고, 이번 전시에서 여섯 작가는 페인팅에서 놀다가, 드로잉으로 놀기도 하고, 입체로 놀기도 하며 공간 부피의 작고 좁은 화이트큐브와 옥탑에 “화가의 놀이터”를 만든다.
《화가의 놀이터》에는 각자에게 숙제가 주어졌는데, 동일 규격의 8호 캔버스 작업 1점과 회화 외 다른 매체의 작업 1점으로 부담 없이 창작할 수 있는 주먹만 한 무언가를 하나씩 준비해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1층에는 임지현이 모임 구성원들에게 선물한 캔버스에 그린 새로운 회화 여섯 점이 한 벽에 단란하게 걸려 있고, 윈도우 쪽 긴 벽에는 학교 철공실에서 일하는 이준용이 만든 선반 위, 각자가 구축해온 평면에서 걸어 나온 듯한 입체들(김승규, 임지현, 황예랑…)이 놓여있다. 버리려던 왁구를 잘라다가 만든 종이학과 구두 조각(함성주), 앵무새를 오래 키웠던 친구에게 선물하고자 시도한 양모펠트(이준용), 요즘 덕질하는 그룹의 응원봉(고경호)처럼 취미의 영역에서 수집한 것이기도 하며, 손장난으로, 놀이 삼아, 그림을 그리고 남은 재료를 활용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해 처음 만든 것이 모여 있다.
건물 옥상의 철판으로 마감된 옥탑 안은 꼭 행복반의 작은 비밀기지처럼 보인다. 여섯 칸의 선반에는 한 사람당 한 칸씩 지난 2년간 각자가 성실히 그려온 드로잉북을 비치했고, 벽에는 5호 이내의 작은 그림들이 자석으로 붙어 있다. 여기에는 스터드로 꾸민 액자에 걸린 드로잉도 있고, 더 좋은 물감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캔버스를 재활용하거나, 과거 덜 마른 채 전시에 출품했던, 나를 자신없고 창피하게 했던 그림 위에 새로 그린 그림도 있다. 바닥에는 고경호가 바느질한 작은 의자들, 또 그가 만든 후드를 입은 풍선 마네킹과 황예랑의 저글링하는 생쥐 스컬피가 천장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처음 이 모임을 제안한 황예랑은 “작업을 놀이라 생각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시를 빌어 행복반이 지난 시간 함께 해온 것은 현재와 미래, 종국에는 나라는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었던 창작이란 무거운 일을 나누어 들며, 함께 때로는 혼자서도 놀 수 있는 놀이터를 함께 만들어온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예술가가 되고, 어떻게 예술가가 되고, 어떻게 내가 믿는 예술을 실천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연루된 창작은 밝고 따뜻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미술은 “나를 괴롭히는 것, 나를 화나게 하는 것, 구역질나게 하는 것,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내가 동경하는 것, 내가 살아있게 하고 내가 파멸하게 하는7)” 나의 세계이다. 그 틈에서 이 작은 놀이터, DIY 공동체는 처음 예술을 시작한 이유, 계속해서 만들고자 하는 감각을 회복시키며, 수많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난 계속할 수 없어. 난 계속할거야.8)(I can’t go on, I’ll go on.)”는 희망을 딛고 또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 사뮈엘 베케트, 『포기한 작업으로부터(From an aboundoned work)』, 윤원화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9. 이 서문의 제목은 베케트의 단편에서 차용했다. 나는 베케트가 글쓰기 그 자체와 미완의 텍스트들을 모두 포함하며 작업(work)이라고 표현한 단어를 빌려, 창작 행위(Art work)와 그 과정을 수반한 결과물인 작품(Artwork)을 동시에 가리키고 싶었다.
- 이 글에서 2010년대 이후 미술계의 구조적 상황과 예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신혜영의 연구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 『한국언론 정보학보』, 76호(2016)와 「한국 미술생산장의 구조 변동 연구」, 『현대미술사연구』 43(2018. 6)를 참고했다.
- 2012년 결성된 미술생산자 모임은 예술가들의 지속가능한 창작권에 관하여 공론화하며 아티스트피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이 모임에는 미술작가들을 중심으로 큐레이터, 인턴, 비평가, 학예사, 시간강사 등 미술생산과 관련된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서울: 도서출판 길, 2010, p. 56.
- 국립현대미술관, 김지원 인터뷰 「MMCA 작가와의 대화: 김지원 작가」, 2021, 08:12-09:03
- PKM 갤러리, 김지원 개인전 «LEMON»(2022) 서문 참고
-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라승도 옮김, 곰출판, 2021, p. 22.
- 사뮈엘 베케트,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전승화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6, p. 178-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