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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크캠프/설치 기록/김자연, 윤여진, 천현령의 대화

김자연, 윤여진, 천현령의 대화

모크캠프의 단체 설치 2회차 기간에 김자연, 윤여진, 천현령이 나눈 대화의 기록.

메모

대화록

김자연
궁금한 거 있어. 왜냐하면 둘은 짝꿍이지만 나는 아니기 때문에 유추하고 있는 게 있는데, 오늘 하나가 틀렸잖아.
예를 들면, 동선을 원래 혼자 고민해서 결정하고 있었고, 종이테이프로 동선을 체크하는 일도 혼자 했잖아.
오늘 우리가 대화를 하니까 같이 이걸 정해보는 게 어떠냐 했는데, 여진 언니가 “그건 내 짝꿍의 맥락에 맞지 않아”라고 했잖아.
윤여진
그렇게까지 세게 말했어? 내가?
김자연
왜 동선을 본인이 정하는 게 맥락에서 중요한 거야?
윤여진
그게 나는 엄청 “맞지 않아”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얘기를 하면서 내가 가는 방향을 지정해주는 것도 얘기를 한 적이 있어서, 그게 꼭…
천현령
여진 님이 놔주고, 제가 따라오기…
김자연
근데 짝꿍이 놔주는 건 괜찮았잖아.
윤여진
아니, 그것도 그냥 괜찮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천현령
그것도 맥락과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뺐어요.
천현령
사실 동선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인 작업을 제 작업 맥락에서 생각해봤을 때 저는 작업에서 주체성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보니까요.
노트를 쓸 때도 그렇고, 제 작업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항상 뭔가 타인, 가족이라든가 어떤 사회에서 정해주는 움직임대로 신체를 항상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았어요.
실제 신체도 그렇고, 저한테 부여되는 어떤 사회적인 위치도 그렇고.
그래서 저한테는 스스로 움직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행위가 되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김자연
근데 저희가 의견을 붙이면서 그게 좀 약해 보이긴 하니까, 그렇죠.
천현령
근데 예를 들면 동료들이랑, 아니면 짝꿍이랑 같이 그것을 하는 건 또 다른 맥락이 생기니까.
그래서 제가 완전히 “싫어요”라고 하지 않았던 게, 그러면 또 다른 작업 내용이 생기니까 그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예요.
그래서 “그렇게 해볼까요?”였지, 완전한 노땡큐는 아니었어요.
천현령
그래서 이제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 방향도 해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쨌든 연습이고 실험이니까, 그 시도도 해볼 수 있겠다.
윤여진
주체성이 있고 연대 쪽으로 나가려면 퍼포먼스 방식이 달라져야 될 것 같아.
예를 들면 각목을 제가 이렇게 놔주고 따라오는 건데,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내 작업으로 동선을 만들고 현령 님이 그걸 퍼포먼스하는 거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이게 맞나 싶었던 부분은 내가 제시하는 대로 따라오는 것이 되게 수동적인 방법이 되는 거니까.
그게 아닌 어떤 장치를 만들어서 퍼포먼스에 적용이 되면, 연대의 모습이 드러나는 퍼포먼스는 좋을 것 같아.
김자연
두 번째 궁금한 게 있어.
하나 덧붙이자면, 그 연대하는 것도 또 다른 방향이잖아요.
천현령
네, 근데 저도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해보면서 여러 생각도 들고 다른 방향들도 들겠지만,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퍼포먼스만 하는 것도 사실…
저희가 “나는 주체적인 사람이고, 나는 지금 이렇게 하고 있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주체적인가?”, “정말 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아직까지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살고 있고, 너무 안전하게 살고 있고…
그래서 그런 걸 다시 생각해 보면서, 개인 설치 때도 어떤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등반을 할 때도 사실은 완전히 혼자 하는 게 아닌데,,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파트너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동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도와주는 사람, 그리고 제가 아예 주체성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황 같은 걸 일부러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자연
그게 개인 설치 때 좀 더 드러나게 되는 거 아니에요?
천현령
그래서 완전히 제가 고립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어떤 도움을 받는 상황도 만들어보고 싶어서…
김자연
그랬던 것 같아.
그럼 다른 궁금한 거, 너무 내가 짝꿍이 아니어서 잘몰라서 혼자 유추한게 많았는데,
제가 이해한 현령 씨는 위로 가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왜 갑자기 수평인것인지.
천현령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윤여진
왜냐하면 “수평적 등반”이라는 용어도 쓰거든.
김자연
수평적 등반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천현령
약간 그걸 설명하자면, 수직으로 오르는 것이라는 등반에 어떤 정복적인 의미가 있잖아요.
산을 정복한다는 그런 의미도 있는 것인데, 수직으로 올라간다는 게 아닌 어떤 수평적인 등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천현령
그러니까 이런 등반을 생각하게 된 완전 첫 계기는 제가 학교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을 때 사실 돈도 없고 엄청 높은 걸 쌓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옆으로 되게 긴 어떤 조형물을 만들어서 등반하는 걸 했었는데, 그때 많이 들었던 얘기가 수평적으로 가로로 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는 얘기였어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됐는데, 위로 올라가는 조형물이나 산을 올라가 정복하는 것들도 사실 다 백인 남성들의 어떤 정복 욕망에서 시작되었고, 어느 나라가 에베레스트를 먼저 정복하는 것이 권위이고 권력이고 이런 서사들도 있어서.
그래서 홀론 때도 그런 수평적인 움직임을 조금 더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생각했고, 또 실제로도 지구력 훈련 같은 걸 할 때 가로로 되게 긴 벽을 계속 옆으로 가는 등반이 있어요.
천현령
근데 그게 올라가는 게 아닌데도 10분 정도 매달려 있으면 진짜 힘들거든요.
근데 여기에 또 고민할 점이, 가로로 가는 것이 그러면 중력에 반하는 게 아닌 거냐는 얘기도 들었어요.
가로로 가는 것도 결국 중력에 반하는 힘을 쓰는 거고.
그래서 그런 고민 지점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수평적 등반만이 내 작업이야”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그 작업들 중 하나인 것 같아.
김자연
근데 최근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여자가 보스가 되는 방법이 왜 꼭 남성들이 했던 방식이어야 되는가 같은 논의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냉정하고 논리적인 것이, 감정적이고 섬세한 것보다 좋은 것처럼 여겨지는 거.
그래서 뭔가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수직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있는데, 그럼 수평을 선택한 게 감정적이고 섬세한 쪽 같기도 하고…
천현령
맞아요. 여성적 리더십 같은 거에서 원래 사회의 위계도 남성적 리더십은 수직 사회고, 여자들은 가로로 수평 사회라는 식의 얘기도 봤었어요.
윤여진
그러면 여기서 하는 것도 수평적 등반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지금도 등반이죠.
천현령
네, 이거는 완전 수평의, 거의 제가 해봤던 등반 퍼포먼스 중에는 가장 횡단하는 느낌이라서 수평적 등반의 하나인 것 같아요.
김자연
그럼 작은 나무 두 개를 준 이유는 뭐예요?
천현령
전에 모크캠프에서도 등반했을 때 제가 그때도 룰을 정했던 게 “바닥을 밟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런 여성주의적 텍스트나 태도들이 항상 원래 있는 것을 전복하거나 원래 있는 힘에 저항하거나 반항하는 것들이어서, 저는 그런 장치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냥 쉽게 밟을 수 있는 땅, 그저 기능하는 바닥을 밟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서는 정말 편하게 밟을 수 있는 땅을 밟지 않고, 또 올라갈 수는 없고, 공간의 제약이 있으니까 최소한 내가 밟을 수 있는 나의 땅을 만들어서 그걸 하나하나 밟으면서 가려고 하다 보니 그 작은 나무 조각이 생기게 됐어.
김자연
그럼, 동선을 정할 때 이렇게 가도 되고 저렇게 가도 되고 하잖아요. 무슨 기준이에요?
천현령
그러니까 방향이요?
김자연
방향이랑 순서.
천현령
일단 어쨌든 동선이다 보니까, 사실 이거는 제 맥락이랑 엄청 맞닿아 있진 않은데 여기서 해본 시도이긴 해요.
관객이 이 전시를 본다면 어떻게 볼까 생각도 해보고, 여기서 여러 관객들을 보면서 어떻게 여길 돌아가는지 관찰도 해봤는데, 생각보다 되게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서 보시는 분들은 잘 없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이렇게도 들어가 보고 저렇게도 들어가 보고, 그건 그냥 랜덤하게 제가 정했던 것 같아요.
김자연
약간 주변…그럼 동료의 작업이, 슬프지만 약간 제약인 거죠. 그쵸, 한쪽은 벽에 있으니.

천현령
근데 작업 재밌었던 게, 작업마다 특징들이 있잖아요.
정말 가변적이고 연약한 것도 있고, 정연 님 작업은 조금 더 뒤에서 봤을 때랑 느낌이 또 다르고 그런 것도 있고.
그래서 확실히 이런 연약한 작업들 사이로 갈 때는 각을 더 많이 줘서 로프가 당겨졌을 때 얘네를 치지 않도록 뭔가 만들고, 그런 계산은 필요했던 것 같아.
그리고 줄을 많이 뽑아놔야지 여기서는 좀 더 안전하게 갈 수 있고, 여기서는 조금 줄을 덜 빼놔도 확 당겨도 괜찮다, 그런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
윤여진
저는 궁금한 게,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되게 신체를 쓰는 일이고, 그에 대한 어떤 스스로 느끼는 내 신체가 어떻게 반응한다든가, 등반을 하면서 어떻게 반응한다거나, 이쪽으로 가게 한다거나 이런 관점이 있을 텐데, 그건 약간 본인만 아는 걸 것 같아서.
이 등반을 하거나 다른 등반을 할 때 어떤 신체 감각을 느끼는지 궁금했어.
그냥 산을 탈 때랑 또 다를 수도 있고, 아니면 수평적 등반이라는 것도 클라이밍을 할 때랑 이게 퍼포먼스로 들어왔을 때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천현령
맞아요.
천현령
확실히 그런 형식, 형태를 빌려온 건 맞는데 느끼는 거는 많이 다른 것 같아.
몸이 느끼는…
천현령
예를 들면 여기서 할 때도 그런 건 있는 것 같아. 작은 피스 위에 서 있을 때 몸이 밸런스를 잡는다거나, 작은 돌 위에 서 있을 때 힘을 줘야 되는 감각 같은 건 당연히 그 힘만 알잖아.
윤여진
그래요. 그러면 이게 퍼포먼스니까 그게 관객한테 되게 직접적으로 전달이 되는데, 그럴 때는 어떤 생각하세요?
어떤 게 전달이 돼요?
몸의 긴장감이나, 떨리면서 못 내려가서 앉았다가 일어나는 거나, 숨을 후후 내뱉는다는 게 퍼포먼스를 할 때 관객이 별로 의식이 안 되는지, 그런 것도 궁금하고.
천현령
일단 저는 퍼포먼스가 좋은 게, 영상이나 이런 걸 아무리 봐도 제가 느끼는 게 지금 당장 전달이 안 되니까 퍼포먼스가 좋은 건데,
제가 의도해서 만든 작은 조각, 작은 피스 위에 서 있는 것이 긴장이 되고 땀이 나고 하는 것들을 진짜 옆에서 보고 느낄 수 있고, 그게 전달됐다는 게 저는 일단 좋아요.
김자연
많이 긴장돼?
천현령
그럴 수도 있어.
그리고 방금 여쭤보신 건 제가 퍼포먼스 일지에도 써놨는데, 이런 거 많이 물어봐요.
산 위에서 등반할 때 엄청 높이 올라가 있으면 안 무섭냐, 땅이랑 바닥이 안 무섭냐라고 하는데, 저도 다른 클라이밍 하시는 분들이랑 얘기할 때 공통적으로 했던 얘기가, 생각보다 당장 내 눈앞에 지금 이거 잡아야 할 것에 집중하느라고 그 당시에는 뒤가 생각이 안 난다는 거예요.
여유가 없고 여력이 없고, 눈앞의 내가 잡아야 할 것만 생각이 드는데 그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퍼포먼스를 할 때도 그냥 제가 당장 이 앞에 있는 이것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해야 되나. 집중을 안 하면 떨어지기 때문에 그것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그게 등반할 때 실제로 느끼는 거랑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윤여진
그러면 이거 아까 비슷한 얘기했던 것 같은데, 옆의 작업들이 제약이 될 수도 있는데 동선 등반하면서 저 작업이랑 어떤 관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가까이 가니까 뭔가…
천현령
한 발 한 발 가느라 바빠요. 바쁘고, 사실 작업의 맥락을 생각할 여유는 없는데, 아까 원재 님 작업이 완전히 바로 옆에 있었거든요.
근데 좀 좋았어요. 기분이. 이 작업이랑 몸이 완전 밀착돼 있어서 되게 긴밀해지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자연
근데 아무도 그 각도에서 안 보긴 한다.
천현령
바닥에서도 안 보고. 그리고 스케일이 제가 움츠려 있을 때랑 비슷해서, 뭔가 같이 나란히 서 있는 느낌이 되게 색달랐던 것 같아요.
사실 무서워서 1일 차, 2일 차 때는 저 안으로 못 들어갔거든요. 그냥 멀찍이 지나갔었는데.
천현령
저희 시간을 좀 정해놓고 갈까요?

김자연
여진 언니 안전장치 얘기를 그럼 해볼까? 왜냐하면 현령 언니랑도 관련 있을 거잖아..
윤여진
아까 자연이랑 살짝 얘기하다가 “나중에 얘기해야지” 하고 아껴뒀던 건데, 안전장치가 작업에 들어오게 되면 저희가 그 얘기도 같이 많이 했잖아요.
이곳의 기관, 이곳의 규칙 같은 게 있고, 그것을 잘 지키려면 내가 내 작업 안에 들여와야 하는 게 있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바뀌게 되는데, 그걸 어떻게 작업에 자연스럽고 가치 있게 넣을 것이냐를 되게 많이 고민했었는데,
이번에 안전장치를 만들면서 현령 님이랑 대화할 때도 안전에 대한 얘기를 되게 많이 나눴었어서…
일단 원래 이걸 직립이라고 한다면, 이걸 세울 때 지금은 연결도 시키고 접착제도 쓰고 했잖아요.
근데 전에는 그런 걸 안 하고 그냥 세웠거든요. 무게중심으로 맞춰서.
그래서 2단짜리 하나 세우는 데 6시간 걸리고, 진짜 계속 떨어뜨리고 그랬어요.
날씨도 많이 탄다는 걸 알게 돼서, 사실 나는 이 작업이 미술관에 들어오면서 걱정됐던 게 장마가 있었어서 장마의 습기를 먹으면 얘가 다시 다 펴지거든요.
그런 문제도 있었고, 이 공간에 얘를 어떻게 적응시키느냐의 문제도 있었어요.
윤여진
근데 거기에서 제가 끝까지 안전장치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어서 바등바등대다가 생각한 게,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않지만 그 가운데 안에 들어 있는 장치를 생각하게 된 거고, 연결점은 물론 눈에 가리게 한 건데 그것도 보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튼 결론은, 내가 처음에 스스로에게 부여한 어떤 설정, 규칙에 꼭 그렇게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그랬을 때 생기는 한계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이 어디로 가지 못하고, 다음으로 가지 못하고, 그 상태에 꽉 붙잡혀 있었던 상태.
근데 내가 원했던 건 아니지만 외부에서 어떤 제약이 들어오게 되니까, 사실 그걸 해결하려고 안전장치를 작업에 넣은 건데, 그것을 작업으로 생각해서 어떤 요소로 작업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니까, 그걸 하다 보니 이 작업이 지금처럼 세우는 모양 말고도 다른 방향으로 많이 풀릴 여지가 보이는 거예요.
윤여진
예를 들면 요즘 고민하는 게, 이런 안전장치로 셀을 만들면 얘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같은 고민도 하게 되고.
그래서 제가 이 세우는 작업이 뻔뻔함이어서 뻔뻔함과 조력자들이라고 했던 게, 그 조력자들이라는 안전장치의 지위가 단순히 보조 역할만은 아니게, 조형적으로…
김자연
…를 위해 하는 것만으로 생을 다하지 않게 하려고 한 거잖아.
윤여진
아무래도 그래서 여지가 열리니까 작업이 좀 더 풀릴 수 있는 방향이 보여서 좋았어요.
김자연
그러면 얘가 지지대처럼 보이는 걸 하고 싶은데, 그랬을 때 어떻게 보면… 뭔가 척추뼈 같기도 해. 그리고 얘가 언니가 말한 고민도 해결될 것 같아. 보조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보조를 함과 동시에 시각적으로 기능을 하니까.
윤여진
맞아.
천현령
근데 제가 뭔가 여쭤봤었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얘를 이렇게 세우게 된 계기는 뭐예요?
윤여진
저는 사실 이 작업이 천장까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왜냐하면 한 공간의 규격이다 보니까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얘가 기둥인 척, 나무인 척 좀 뻔뻔하게 있는 모습이길 바랐어요.
왜냐하면 합판이 나무에서 가공된 재료인데, 그 재료가 어떤 규격에 맞게 정규격으로 가공되면서 납작하고 평평하게 된 것을 다시 제가 원형으로 만드는 과정이니까,
이 자체도 쌓여서 이 규격은 보이니까 합판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또 나무인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만들고 싶었어요.
천현령
그러면 그 맥락에서는 아무런 접착제나 이런 걸 안 쓰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뭐예요?
윤여진
좀 뭔가 솔직하게 말하면그렇게 쌓는게 좀 더 과업을 극복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접착제 없이 얇은 두께의 원통이 쌓여있다면 좀 더 극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그냥 편하게 말하자면, 이게 되게 쌓는다는 행위가 엄청 조각적인 행위인데, 안 쌓아질 것 같은 걸 잘 쌓아놓는 그 모습이 되게 뻔뻔하다고 느껴졌고,
기둥인 척, 나무인 척하는 것도 뻔뻔하고, 되게 잘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뻔뻔하고.
그래서 딱 들어왔을 때 하나의 기념비처럼 서 있으면 강해 보이잖아요.
근데 막상 봤을 때 안이 텅 비어 있다거나 하는 그런 부분들을 생각해봤어요.
그것도 처음부터 쌓을 때 생각한 건 아니고, 쌓고 나서 보니까 그렇게 보이더라에 더 가까울 수 있겠지만.
천현령
그러면 더더욱 사실 어떤 장치가 없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근데 제약을 자꾸 두니까 작업이 더 나아갈 수가 없다고 했는데, 그 제약을 두는 게 작업의 내용이면은…
윤여진
이제 그래서 다른 작업으로 가고 있는 상태라는걸 받아들이고 있어요.
김자연
나는 이거 언니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는데, 그냥 편하게 한번 말해볼게.
내가 평소에 가지는 의문이 하나 있어.
뻔뻔함이라는 게 왠지 언니입장에선 언니의 안에서는 확신이 가는 단어인 것 같아보여서, 조심스럽고 궁금해.
제3자가 봤을 때는 언니의 이 얘기를 듣고 보면 되게 정확한 단어는 아닌 것 같아. 왜냐하면 “뻔뻔하다”라고 하면 뭔가 “너 되게 뻔뻔하다” 했을 때 얘 잘못이나 얘 책임이 돼버리는 느낌이 있잖아.
근데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어쩔 수 없음을 알잖아.
윤여진
제가 뻔뻔함을 쓴 건, 합판 덩어리가 뻔뻔하게 그거인 척한다는 느낌이었어.
김자연
근데 사실 속은 아니잖아.
윤여진
속이 비어 있을 수 있지. 그게 웃긴 거고. 그래서 뻔뻔해.
김자연
근데 그게 얘가 뻔뻔한 게 아니라, 그걸 본 언니의 감상이 뻔뻔한 거지.
“얘 참 뻔뻔하네.”
근데 얘는 사실 되게 애쓴 거고, 어떻게 보면 악바리고, 사정이 복잡한데 그냥 뻔뻔하다고 해버리니까 얘가 그렇게 위치되고 끝나는 느낌.
근데 언니가 직감적으로 “이 단어야”라고 느끼는 것 같아서, 내가 느낀 건 그랬다는 거야.
언니가 이거에 대해 설명할 때는 얘의 입장으로 설명하는데, 제목은 관찰자 입장인 것 같아서.

윤여진
그럼 궁금한 거. 내가 설명한 게 이 작업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내가 작업과 동일시한다고 느껴졌어?
약간 메타인지를 위한 궁금함이야. 내가 스스로 말하는 태도를 잘 모르겠어서.
김자연
제가 방금 말한 걸 기준으로 하면, 뭔가 쓸쓸하거든.
얘 지나간 과정이 애쓰는 것 같고, 텅 비어 있고, 겉은 안 그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있는데,
그랬을 때 얘가 뻔뻔하고 싶어서 뻔뻔한 게 아니었는데…
윤여진
쓸쓸한가…
김자연
그랬을 때 언니는 조심스러워하고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항상 느끼는 건 언니는 얘랑 동일시하는 마음이나 비유로서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것에 비해 발표하거나 제목을 지을 때는 항상 관찰자 같아.
윤여진
내가 왜 작업을 그렇게 설명하냐면, 최근에 생각했던 부분이 내가 사물을 가져와서 집으면 왜 그걸 은유의 대상으로 쓰지 못할까였어.
예를 들면 은유를 하려면 그게 이미지고 어떤 상징이 있고 맥락이 있는 것을 사용하는 거잖아.
근데 나는 그 고민을 하다가, 왜 그걸 은유나 비유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으로 쓰지 못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어.
근데 내가 작업을 할 때 물질을 다루는 걸 먼저 시작하니까, 그 물질을 알게 됨으로 인해서 이 사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특성을 알게 되고, 그러니까 내가 이 사물을 함부로 쓸 수가 없는 거야.
쓰여진 맥락이나 의미 같은 것보다는, 이걸 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하면 스스로 대상화하게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그걸 못하고 있었어.
윤여진
근데 또 최근에 든 생각은, 내가 사물을 대하면서 겪으면서 일어난 일 때문에 그런 것이고, 저 사물이 가지는 의미나 맥락은 다른 층위의 얘기라는 걸 알게 됐어.
언어적인 이야기라든가, 서사적인 부분이라든가.
그래서 내가 사물을 집어올 때는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사물의 세계라고 하면 좀 거창한데…
김자연
완전 신유물론적 같은거야?. 그러니까 사물에게도…
윤여진
마음이 있다는 신념으로는 아니고, 어쨌든 인간과 같다기보다는…
그러니까 의인화를 하는 것은 신유물론에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이지, 사물을 의인화해서 바라보진 않거든.
김자연
맞아 맞아. 내가 말한 건 언니가 그런 선택을 하면 위계가 생길 것 같아서 조심스러운 거지.
윤여진
그래서 내가 저 물질을 잡을 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게 되는 거야.
그래서 신유물론을 많이 추천받았고, 책도 읽어봤는데.
아무튼 그 담론과는 별개로,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있는데 예전에 레포트로도 쓴 내용이야.
어느 날 술을 먹는데 저기에 어항이 있었고, 어항의 금붕어 눈이 튀어나와 있는데, 나는 쟤가 보이는데 쟤는 내가 보일까? 라는 생각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물고기가 어떻게 보는지 검색도 해보고, 도서관 가서 물고기 관련 서식, 생태 책도 다 찾아봤는데,
처음에는 되게 짧은 순간에 “나는 쟤를 보네. 쟤도 나를 보겠지”였거든.
왜냐하면 내가 보이는 것만 보이니까.
근데 책을 보니까 어떻게 서술돼 있냐면, “1급수에 사는 물고기는 물이 맑고, 돌출된 눈 형태니까 180도 정도의 가시거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는 거야.
그걸 보면서, 나는 되게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었어.
그 이후에 내가 무언가를 대할 때 스스로 재단하려는 마음을 되게 크게 억누르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의미를 덧씌운다는 게 사물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김자연
그럼 “뻔뻔하다”는 게 뭐지?
언니가 얘의 입장으로 제목을 짓기에는 그게 걸리는 거야.
왜냐하면 언니는 얘의 사정을 모르니까.
그래서 언니는 관찰자로서밖에 말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언니가 봤을 때 뻔뻔하다, 이런 이유로.
천현령
저는 그렇게 이해했어요.
뻔뻔한 게, 얘의 입장에서 “나는 기둥인 척, 나무인 척 스스로 여기 존재하고 있는 게 난 뻔뻔해” 약간 그렇게 이해했어.
그거가 그렇게 보이는…
저는 보이는 입장의 뻔뻔함으로 이해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스스로 뻔뻔해”라고 설명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뭔가…
천현령
저는 그러니까 1인칭 입장에서 “나 뻔뻔해”로 이해를 해서, 그래서 뻔뻔하다는 단어보다 약간 당당함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해.
사실 내가 나를 보고 “나 뻔뻔해”라고 잘 안 하잖아요.
김자연
근데 당당한 거랑 뻔뻔한 거는 또 다르죠.
당당한 건 정정당당한 건데, 얘는 정정당당하지 않은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있는 느낌이니까.
윤여진
그러니까 이놈은 딱 맞는 단어는 아닌데, 뭔가 그런 느낌이 있어.
김자연
뻔뻔한 이슈가 있었어.
윤여진
근데 그래서 너도 계속 얘기를 하는데, 나는 일단 사물을 집어오면 그렇게밖에 아직은 서술을 하지 못하겠는…
김자연
관찰하는 입장으로.
관찰자의 입장으로 조심스럽게 정의 내리는 태도가 있는 것 같아.
근데 그것이 생물학자가 갖는 태도랑 비슷해.
윤여진
내가 그런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
김자연
그 책에서 나온 것들이 그런 거였어요.
생물학자가 얘 하나를 관찰하기 위해 40년도 쓰고, 인간보다 오래 살면 다 못 쓰기도 한다.
그리고 한눈 팔면 얘가 갑자기 똥 싸러 가고, 언제 똥 싸는지 모르는 거야.
그래서 계속 주시해야 되는데, 주시할 때 내가 얘 인 것처럼 행동해야 돼. 얘랑 같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춰야 된다는 얘기가 나온단 말이야.
예를들면 얘가 앉아서 시점이 여기 있으면 나도 이렇게 봐야 되고, 얘가 여기를 보는데 내가 이렇게 얘를 볼 수는 없는 거야.
윤여진
그래서 내가 피드백 받을 때 염쌤이 해주셨던 피드백 중 하나가, 네가 합리적인 태도도 있고 연구자적인 태도도 있는데…
김자연
그런 것 같아
윤여진
근데 연구자랑 작가가 같이 있는 게 사실 이상한 것 같다, 어긋나는 것 같은데 왜 같이 있냐는 피드백.
김자연
근데 무슨 문제점인지 알긴 해.
왜냐하면 세울 때 시각적인 걸 고려를 한다는 것이잖아.
뭔가 이 방향으로 할까, 저 방향으로 할까 하는 마음.
윤여진
근데 이게 선후가 있는 거잖아.
이건 조각이고, 조각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거고, 이거는 만든 결과물을 보고 내가 보는 거.
김자연
그런 점에서 생물학자랑은 좀 다르네. 그리고 생물학자일 수는 없는…
윤여진
응, 내가 만드니까.
김자연
그러면 언니가 만들고 뒤에다 바라보면 그건 왜 안 되지?
천현령
그러면 이제 이 안전장치가 이번에 미술관에 들어오면서 같이 들어오게 됐는데, 그러면 오히려 이걸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 앞으로 다른 방향으로 더 생각해보신다는 거예요?
윤여진
네.
이 안전장치가 들어오면서 해볼 수 있었던 게, “세운다”는 행위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원래는 이걸 쌓는 거였으니까 위로 가는 것밖에 없었는데, 안전장치가 어떤 지지를 주느냐에 따라서 얘의 모양이 바뀔 수도 있는 가능성이 생긴 거죠.
어떻게 세워지느냐.
그때 노해나 큐레이터님도 잠시 얘기해주셨는데, 여성 작가들이 어떻게 세웠는지를 한번 리스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 세우는 방식은 남성 작가들이 해온 방식과는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고, 그걸 연구하는 팀도 있는 것 같다, 한번 찾아보아라.
그런 부분도 사실 내가 해볼 수 있는 부분이구나.
왜냐하면 그전에는 물리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세울 수 있는 방식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게 한계였다면, 지금은 다른 방향이 생겨난 거고.
윤여진
근데 그게 세웠다고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또 뻔뻔하게 “세우기”라고 해야겠죠.
윤여진
이 뻔뻔함은 그럼 나도, 그 뻔뻔함에 힘입어 나도 어떤 뻔뻔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너 할까?

천현령
제가 작업을 엄청 잘 알진 않아서…
김자연
근데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천현령
어떤 소녀, 미소녀…
미소녀 아닌가? 그런 신화적인 것에서…
김자연
저는 이미지 중에 여성의 이미지, 여자의 서사가 투영되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미소녀나 꽃이나 여신, 물 같은 것들이 어떤 타인의 욕망에 의해서 기대되는 여성성이 있는 이미지들인 거예요.
저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데, 동시에 이 이미지들에 저도 매혹되면서도, 이면을 알기 때문에 양가적인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걸 그림으로 풀어내는 것 같아요.
작업 과정은 디지털에서 본 이미지들을 재편집하고, 이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이미지의 원형이 있잖아요. 그러면 한 번 멀어져요.
그리고 이걸 다시 회화로 옮기면서 물감이나 제 몸의 움직임이 달라지잖아요.
재료랑 환경이 다르니까, 그 재편집한 이미지랑도 멀어지고, 저는 기계가 아닌 몸을 가졌기 때문에 되게 우발적이고 호르몬의 영향도 받고 계획 이탈도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계속 멀어지면서, 그 멀어지는 과정에서 어쨌든 재해석이 되는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소비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되도록 두텁게 한 번에 쌓기보다 반투명하고 얇게 여러 번 말려서 쌓는 것 같아요.
그날그날 말렸다가 그다음 날 얹고, 이런 느낌이고, 이게 얹으면서 스며드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반투명한 게 제가 디지털로 봤다는 느낌과도 가깝다고 생각해서, 미디엄을 투명하게 섞어서 물감을 최대한 반투명하게 쌓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김자연
물감들 중에서도 불투명한 파랑이 있고 투명한 파랑이 있는데, 되도록이면 투명한 쪽을 써서 한다든지.
근데 어쨌든 물질이어서 바르면 반투명해요..
김자연
말리고 그린다는 것도 너무 아날로그적이고, 나는 잠깐 본 이미지인데 그걸 길게 말리면서 몸으로 회화로 소환하는 게, 되게 가볍고 매끄러운 이미지들에게 몸과 무게와 시간을 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근데 회화이기 때문에 작업실에서 오직 저만 알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붓의 농도에 따라서 색깔이 다르다는 거, 어디가 힘들다는 거를 저만 알 수 있고.
그래서 회화가 너무나 개인적인 사건이 쌓인 표면인 것이죠, 저에게.
어떻게 보면 엄청 개인적이고, 저만 재해석한 거니까 그런 거예요.
윤여진
근데 어떤 페미니즘 작가들이 하는 어법은 그걸 완전히 드러내기도 하잖아요
그게 그런 맥락을 갖고 있는 걸 다들 알기 때문에.
윤여진
그러니까 어떤 재해석을 했는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이런 거는 만약 그 맥락을 못 읽는다 해도 상관이 없어?
윤여진
어찌보면, 결과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랬을 때 “그러면 네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결과에서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니야? 읽혀야 되는 게 아니야?”라고 하잖아요.
근데 제가 마음이 복잡한 게, 그 결과가 읽히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포기하기 싫은 거예요.
만약 이렇게 그리면 결과는 읽혀. 대신 좀 못생겼어. 그건 싫어.
차라리 좀 덜 읽혀도 내가 보기에 더 아름다운 구성이 좋은 거고.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서는 나만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게 중요한 것 같은 거야.
윤여진
근데 타인이 부여하는 여성에 대한 아름다움이 있고, 또 자연 님이 정의 내리는 아름다움이 있잖아.
그 기준이 있어요? “내가 보기에 아름답다”는.
김자연
뭔가 조형적 기준인 것 같은데, 그리면서 느끼는 아름답다의 기분…
천현령
어려워.
저는 회화를 안 하니까 그런 게 궁금한 것 같아요.
회화에서 출발점이 이렇고 이런 내용들이 있는데, 그러면 그걸 텍스트를 보고 “그렇구나”라고 이해하면 되는 건지, 아니면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런 의도성이 드러나는 건지.
김자연
근데 회화가 가진 그 특성에서 어려운게 물감 하나하나를 텍스트에 대치해서 그릴 수는 없어요.
그래서 텍스트랑 아주 똑같이 맞닿아서 진행할 수는 없죠. 텍스트에 맞춰서 아름다움을 포기할수도없어요.
그리고 나도 이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 한 번에 읽히니까.
뉘앙스나 분위기만 전달하는 정도의 맥락 전달이 좋고,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를 위해서 내가 그림을 그쪽 방향으로 그리는 게 저와 안 맞는 것 같아.
윤여진
근데 재해석이라는 말을 쓰면 항상 그런 질문이 들어오지 않아요? 방금 같은.
김자연
“너 결과에서 안 보이잖아.”
윤여진
그렇지. 결과에서 안 보이는 것도 그렇고, “그 재해석이 뭔데?” 같은.
김자연
근데 그래서 그 재해석한, 내 안의 미적 기준으로 다시 재해석한 걸 설명하고 싶지는 또 않은 거예요.
이미 봤잖아, 네가 본 게 그게 다야.
그리고 전 내 미적 기준을 전달하고 싶은 것도 아닌 거죠.
“나에게 이런 미적 기준이 있어. 내 조형과 판단이 이거야”만을 전달하는 게 목표는 아닌 것 같아.
윤여진
그러면 그냥 나의 제안인데, 네가 제목을 로잘리아 1, 2 이렇게 짓잖아.
그렇게 짓지 않고 예를 들면 더 길게라든가, 제목에서 더 힌트를 주거나.
김자연
제목에서 원형에 있었던 애들을 알려준 거기도 하잖아.
윤여진
근데 그게 그냥 명사로 던진다기보다는, 뭔가 더 내용이 있다는 힌트를 줄 수 있는 더 긴 문장 같은 제목.
김자연
그림이 좀 불친절하니까 제목에서 힌트를 더 주라는건가….
근데 나는 로잘리아가 되게 많이 줬다고 생각했어.
윤여진
왜냐하면 그걸 되게 쉽게 넘기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로잘리아라는 단어를 보면, 너는 글도 있고 로잘리아도 있으니 힌트를 많이 준 거긴 하지만, 글이 없이 보거나 글을 안 본다거나 하면,
그림에서 그걸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맥락을 다 보여주는 게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하면, 제목까지는 좀 더 해볼 여지가 있나 궁금한 거야.
김자연
아. 근데 나 그런 게 있다. 나 느끼한 게 너무 싫어서, 길어질수록 느끼하다고 생각해.
그런 어려움이 있어.
윤여진
뻔뻔함 같은 거지.
김자연
근데 무슨 의도로 말했는지 알 것 같아. 나도 계속 받는 질문이니까.
어떤 기획자님도 좀 더 감정적?인 걸 쓰라 그러셨어.
무슨 기분을 느끼고 했다던가, 내가 느낀 감정을 더 쓰라는 거야.
난 근데 그게 너무 느끼하게 느껴지는것같고, 좀 … 어쩌라고? 싶달까
근데 만약 그걸 쓰면 사람들이 내 그림을 더 납득하나?
윤여진
그래서 약간 그게 뭔가 불일치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나 봐.
네가 나한테… 계속 요구하는 것처럼 “너 왜 계속 관찰자 시점으로 얘기해? 너의 개인 서사 좀 넣어봐.”
윤여진
개인 서사라기보다는 너와 더 닿아 있는 얘기를 해봐.
김자연
그러니까 회화를 했을 때 발생하는 얘기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아.
내 입장에서는 그림으로 보여줬는데 왜 이렇게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나 글로 이야기를 해야하는것인지..
윤여진
아니면 내용은 그대로 두되, 여성, 꽃, 그 비유가 어떻게 된 건지 내용은 그대로 두되, 그 내용을 서정적으로 쓰는 거야.
김자연.
서정적으로 쓰는 게 뭐야?
윤여진
약간 좀…
(생략)
김자연
그래서 저는요.
제가 회화 과정에 더 집중한 글을 써야 할지, 아니면 방법 혹은 내가 전달하고 싶은 맥락을 말해야 될지 고민 중이에요.
왜냐하면 어쨌든 표면이 좀 추상적이기 때문에 고민이지만,.. 어찌됐건 지금은 그런 것보다 그림에 더 열중하고 싶어요.
글 없이도 설득할 수 있는 작업의 형태를 만들고 싶은게 저의 최대 관심사인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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