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artart.wiki

모크캠프/설치 기록/김나영, 이상희, 이언제의 대화

김나영, 이상희, 이언제의 대화

모크캠프의 단체 설치 2회차 기간에 김나영, 이상희, 이언제가 나눈 대화의 기록.

메모

대화록

이언제
오늘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시작할까요?

김나영
그럼 여기 근처에서 쭈그려서 앉을까요?

김나영
저 근데 이렇게 되면 좀 전체적으로 가는 얘기들이긴 한데, 약간 파렛트 하신 거랑 초나 이 아이들이랑 조금 물질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좀 궁금했고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도 사실 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이상희
저쪽에 있는 파렛트가 2023년에 한 거고, 얘도 2023년에 한 앤데. 저기 파렛트를 보시면 저기에 있는 사자상이 있어요. 사자상 사진은, 제가 찍은 사진이고 돌로미티 시골 마을에 갔는데 뭔가 호수였을 것처럼 엄청 메말라 있고 동그란 돌들이 땅바닥 위에 있었는데. 정말 연유를 알 수 없는 사자상이 저렇게 있었거든요. 그걸 찍은 건데. 그러니까 그 이미지 자체도 되게 기묘하다 생각을 했는데. 아무튼 이 당시에 제 고민은 이미지가 있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들이 있는데 되게 불가해한 방식으로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주는 모호한 것들이 있는데 이거를 어떻게 고민할 수 있을지. 저는 이미지에 대한 질문을 고민하며 작업하는데 그런 시기에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파렛트라는 것은 무언가를 바치거나 뭔가가 얹어지는 것으로서의 사물인데 그 위에 사진 이미지가 올라가고 이미지의 어떤 물질적이거나 언어로 포섭되지 않는 측면을 들여다 보려고 했던 것이 저 시도였어요.
사자상이라는 대상이 있는데 그게 뭐 조각으로 판단이 될 수도 있고 사자의 형상으로 판단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떤 구체적인 목적이나 의미를 가지고 비누를 만들었다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서의 대상이 있고 그러한 이미지 혹은 대상이 다른 물질로서 어떤 또 다른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지 좀 많이 궁금해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좀 미술 싫어하고, 여전히 싫어하는데. 전시장 안의 조각이 아니라 야외에 놓이는 어떤 형태의 사물을 다뤄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고. 그리고 야외면 건축적 재료를 통해서 영구 보존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존성이 강한 방식을 고민을 해야 하는 수순이 있는데, 그런 것과는 다르게 정말 유한한 형태의 조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비누를 가지고서 가볍게 시도해 본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둘은 좀 같은 시기에 같이 나온 이미지, 물성, 모호함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에서 나왔던 거고, 다른 파렛트 작업은 그때 못했던 시도들이 있었고 원래 파렛트의 이미지 작업을 더 해본다면 고려하고 있던 이미지들을 가지고 이번에 이런 형태로 해보게 되었어요.

김나영
종이로 출력하신 이유가 그러니까 사실 되게 다양한 것들이 있잖아요.
파렛트 위에 어떤 이미지를 뭔가 출력해서 했을 때 그냥 종이일 수도 있고 시트지일 수도 있고 되게 다양한 선택지가 저는 있다고 생각을 하긴 하거든요. 근데 뭔가 종이로 하신 것이 딱 그 이미지 자체만 바라보기 위해서예요?

이상희
근데 뭔가 시트지로 하면은.

김나영
다른 의미가 발생하니까?

이상희
시트지라는 게 가진 기능도 있으니까? 그리고 안착시키는 그런 역할이니까 시트지는 사실 고려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미지가 찢기고 여러 이미지가 점점 쌓이고 그런 것들이 지금은 미진한 상태인데 원래 저 작업을 할 때 고려했던 방식이이서 그래서 정말 어딘가에 올려진 이미지 자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려고 했어요.

김나영
근데 저는 그것도 궁금했어요. 얘(상희 님의 작업, 이미지 사이에 틈이 있음) 는 되게 이 위에 아예 안착을 해 있고, 근데 또 쟤는(파렛트 위에 종이를 올려 둔 작업) 되게 불안정하잖아요. 또 얘(파렛트와 이미지 위에 비닐을 올려 둔 작업)는 그 위에 약간 또 다른 비닐이라는 사물이 올라가 있으니까 뭔가 그 부분들에 있어서 뭔가 차이점이 있는지 어떤 선택을 하신 건지 그 선택의 흐름이 궁금했달까.

이상희
제작 시기 사이에 공백이 있잖아요. 지금 다시 해보려고 할 때 이전에 미진했던 시도를 더 해보자 했어요. 뭔가 지층의 이미지를 좀 다른 이미지들이랑 고려해서 더 쌓아서 진행하는 방향을 처음에 생각을 했는데요. 왠지 모르게 이미지가 식별이 안 되는 모호함에 대해서 약간 진짜 이거를 마주하면서 고민을 하게 되는 게 있었고. 뭔가 인쇄된 이미지랑 파렛트 사이를 놓고 이렇게 만져가면서 판단을 할 때, 그 시도를 더 발전시키는 걸 목적으로 실행하기보다는, 뭔가 이미지인데 다른 종류를 경유해서 감각되는 방식을 조금 놔두고 지켜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 종류가 조금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지금 선택한 게 한 가지로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고 3개가 들어 왔을 때 조금씩 다른 것이 매핑이 되니까 놔둬 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첫 출발은 이미지의 다른 영역에 대한 탐구가 조금 주가 되었는데 실질적으로 인쇄된 이미지랑 파렛트라는 사물과 그 사이에 제 손과 눈으로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나타난 것이 저에게 또 많은 결정을 제공하게끔 이끄는 그런 과정들이 있었어요.

김나영
뜬금없는 얘기긴 한데, 저 최근에 작업실에 딱 보이는 곳에 써놓고 있는 게, ‘머리로만 작업하지 말고 손으로 작업하기’라는 문구를 써놨었거든요. 근데 처음에 저는 상희 님 설명 들을 때 논리의 프로세스가 있으시고 그 프로세스에 의거해서 어떤 것들이 선택되고, 선택된 것들이 뭔가 어떤 사물로 나오는 느낌의 작업이라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저기서 얘기하다가 여기에 와서, 그 공백을 이야기하시면서 이미지가 감각되는 방식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근데 제가 그 감각 되는 방식이라는 그 단어에 왜 꽂힌 건지는 모르겠는데 뭔가의 따뜻함을 느꼈거든요. 왠진 모르겠는데··· 그게 왜 그랬냐를 살짝 톺아보면은 어떤 물질적인 접촉을 통해서 그 안에서 머리보다 조금 더 어떤 걸 보거나, 아니면은 우리가 촉각적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어떤 것으로도 결정이 내려 지는가 약간 이런··· 두서가 없어서 죄송해요. 이런 생각이 갑자기 혼자서 들었던 것 같아요.

이상희
그러니까 어떤 논리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게 아예 없다고 할 수 없고, 사실 저 역시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근데 그것을 위해서 방식을 잘 조직하고 하는 것도 중요한데. 어떤 논리적인 방식을 취하더라도 작가의 언어적 층위나 내적인 연결고리로 작업의 모든 것이 다 꿰어져야 하는 게 아니고, 실제적인 것이 주는 감각 같은 것도 간과될 수 없는 것이고. 사실 작업이라는 것은, 작업의 과정에서 결정을 이끄는 선택이, 작업과 작가 사이에서, 뾰족하게 세워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요. 제 말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이게 보기 좋아서 이렇게 했다’ 이런 뜻이 아니고. 되려 ‘작업이 저한테 질문을 줄 때 그것을 어떻게 고민할 것인가’가 작업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나영
언제님도 원래 이 작업에 대한 이야기 들으셨었어요?

이언제
들었죠. 근데 여기 이렇게 놓고 보니까 원래 상희 님이 하시던 생각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고 오히려 지음 님 작업과의 관계를 보면서 읽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상희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오히려 조금 헷갈리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이미지와 물성에 관한 이야기는 이 파렛트에 붙은 이미지만으로 그 이야기를 하는가 생각하면 잘 모르겠고 여기 보이는 사자상이 저 비누 조각으로 만들어졌을 때 그 두 개가 같이 있으면 그 얘기를 확실히 하는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뭔가 여기 있는 사자상이 비누 조각으로 나왔다라는 그 관계가 조금 더 인식 가능하다면 그 얘기가 확 이렇게 좀 물질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같은 이유에서 파렛트 위의 이미지와 지음 님의 조각들을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보니 오히려 이 관계에 대해서 자꾸 생각해 보는 것 같아요.

이언제
또 들었던 생각은 지금 비누 조각과 저 초는 나영 님이 만지는 거에 대해서 얘기하셨잖아요.
상상하게 만드는 재료들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거든요.
만져보고 싶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좀 궁금하고 코에 대고 킁카킁카 해보고 싶고.

이상희
이미 했잖아요.

김나영
아 리얼로?

이언제
이게 이렇게 쓰다듬고 만져보고 싶은 재료들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확실히 이미지보다는 물성이 부각되는 재료들인 것 같은데 그러면 또 저 인덱스의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이상희
근데 이미지의 물성이 그런 재료를 통해서 부각된다는 건 조금 이분법적인 접근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미지를 뭐라고 정의하고 그것에 대항쌍으로서 물성을 탐구하려고 한 게 아니고, 중첩돼 있고 혼재된 상태로 오고 가며 계속 줄다리기를 하는 시도들인 것인데. 그래서 이 설치 안에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서 (언제 님이 말씀해주신 게) 좀 좋은 피드백이었다고 생각하고. 근데 만약에 지음 님의 작업과 제 작업 사이의 관계 때문에 제가 하려고 했던 그 물성에 대한 고민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는 것 같긴 해요. 정말 표면으로서의 물질로만 독해가 되는 그런 거죠.

이언제
얘(지음 님의 작업)도 땅에서 찍어낸 거다 하시고 이것(파렛트 위의 이미지)도 굉장히 표면이 중요하게 느껴지다 보니까 저도 표면에 관련하여 생각을 더 하는 것 같긴 해요. 반대로 이제 사자상과 얘의 관계가 읽히지 않았다면 얘와 쟤는 굉장히 딱 봤을 때 훨씬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저 저거의 물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상희 님 생각하신 것과는 다른 방향일지라도 실제로 하는 일은 약간은 붙어 있는 것 같긴 해요.

이상희
지음 님과 짝꿍 되고 제가 인덱스 방식을 제안했을 때, 지음 님도 매체를 다양하게 활용하시지만 서로 다른 연유일 거라고 느껴졌고, 잠깐의 대화를 통해서. 그래서 실질적으로 작업들이 놓였을 때 만드는 관계 사이에서 서로가 시간을 보내면서 결정하고 바꿔가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긴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따라 지음 님한테 안 좋은 설치일 수도 있고 저한테도 안 좋은 설치일 수 있단 말이죠. 기존 작업의 서로 하고자 했던 얘기랑 좀 다른 식으로 흘러갈 수 있는데, 근데 그 점을 어떻게 다룰 것 인지도 지음 님과 함께 결정하고 싶었던 게 있어 가지고. 그래서 진행의 순서를 그렇게 만들어 본 것도 있고요. 크기에 대한 내용은 저 초 크기에 대한 얘기인 거죠? 제가 큰 것이라 분류한 것.

이언제
사실 초만 있고 초만 ‘큰 것’이라고 적혀 있었으면 그냥 그렇겠다 하고 넘어갔을 것 같은데. 이제 초는 큰 것, 바로 옆에 비누 조각은 작은 것으로 찍혀 있다 보니까 비슷한 물성의 크기도 비슷한 것이 하나는 작은 것이고 하나는 큰 것이네.
그래서 아까 저희가 조금 더 개념적인 방향에 대해서 얘기도 했었잖아요.
약간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딱 아 뭔가 나한테 메시지를 주고 있구나 비슷한 크기의 두 개 중에 하나가 작은 것 하나가 큰 것이라고 그러면 왜 그럴까 이렇게 생각하게 되어서요.

김나영
저는 사실 큰 것, 작은 것(인덱스)에 있어서 저 비율을 그냥 한번 봤을 때 이렇게 상상하긴 했거든요. 중간 것으로 분류된 애들은 사실 명확하게 어떤 형태, 그러니까 크기에 한계가 있는 아이들이고 여기서 뭔가 팽창하거나 수축하지 않는 아이들인데 지금 가변크기라고 적어둔 애들은 뭔가 팽창하거나 수축할 수 있는 애들이잖아요.
그 물질이 가진 어떤 특성 자체가 그런데 약간 저 작은 애(비누 작업)들은 형태 자체가 놓여 있어서 걔가 압력이나 물질적인 다른 부분들이 가해졌을 때 더 작아지나 그런 생각을 했고 얘(양초 작업)는 DP를 하신 걸 봤을 때 위에서 아래로 엄청 흘러내리고, 저 초의 형태가 만약에 완전히 사라져도 잔여물이 남는 거잖아요. 그래서 계속해서 팽창하는 쪽이 큰 것인가 이런 상상을 혼자서 하기는 했었어요. 언제 님은 뭘 상상하셨어요?

이언제
방금 전에 하던 얘기이긴 한데

김나영
그래요? 그래도 알려주시면 안돼요?

이언제
저는 초를 처음 봤을 때는 이게 큰 것이라는 게 촛불은 어느 공간에서 켜도 눅진함이 퍼지잖아요.
냄새도 퍼지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면 빛이 퍼지고 그런 점에서 훨씬 더 감각적인 영향이 비누 조각보다는 크다고 느껴서 이제 제 머릿속에서는 그런 이유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다 보니까 이제 상희 님께 근데 초가 그런 역할을 지금 여기서 하고 있지 않아서, 그래서 그럼 제가 생각한 거랑 상희 님 생각이 좀 다른가 보다라고 생각해서 여쭤봤던 거였습니다.

김나영
이쯤 되면 본인의 생각이 궁금한데

이상희
일단 저는 밀랍이랑 비누가 비슷한 물성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김나영
아 밀랍이었어요?

이상희
양초니까 밀랍.

김나영
저는 저것도 비누 같은 걸로 만들었나 싶었어요. 제가 오독했어요.

이상희
아니, 아니요. 둘 다 가변성이 있지만 세심하게 보면 다르다는 말이었어요. 뭔가 초라는 사물의 의미가 엄청 강하게 작동하는 것보다 상태 변화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역할로서 초를 쓰게 된 것 같아요. 초의 기능적인 거라기보다는. 그랬을 때, 어쨌거나 저 아이랑 저 아이 둘 다 조각 오브제의 층위로서 여기 초대된 거라 생각을 해서 언제 님이 말해 주신 빛이나 향기 이런 층위보다는, 물리적인 존재로서, 그것도 물리적인 영역이지만. 먼저 시각으로 지각되는 오브제로서 얘네들이 여기서 들어왔을 때를 상상하면서 그렇게 접근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이언제
근데 확실히 제가 말하고 나서 상희 님 얘기 듣고 나니까 생각이 든 거는 또 비누보다는 상상의 여지가 훨씬 큰 형태인 것 같기도 해요.

이상희
저는 비누에 대해서 정말 사라지는 순간이 도래할 거라고 생각을 계속할 수밖에 없던 것 같아요. 비누는 생각보다 예민해서 막 무슨 운동한 사람처럼 땀 흘리듯이 송글송글 맺히고 그런 것도 있고요, 가만히 그냥 냅둬도. 그래서 초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재료인 것 같아요.

이상희
저한테 20분 할애한 거 아니에요?

김나영
근데 재밌는데.

이언제
지금 한 사람당 한 시간씩 해도 모자랄 것 같아요.

김나영
그니까.

이상희
페탐해요, 페탐.

김나영
우리 어차피 계속 만날 거 아니에요?

이언제
일단 넘어가시죠.

김나영
이렇게 돌까요? 여기 딱 바로 앞에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두 분은 많이 대화를 나누셨나요?

이상희
많이라기 보다는 그냥 최초의 만남 때 조금.

이상희
저는 아무리 봐도 언제 님 작업과 자연 님 작업이 서로 많은 것이 어려웠겠다 생각을 하게 되는···.

김나영
저는 약간 거의 정반대의 끝에 있는 작업들이라고 생각을 하긴 하거든요.
그래서 이 둘이 어떻게 될지 좀 궁금했던 것도 있던 것 같고. 근데 언제 님 어제 얘기하실 때 이 설치를 하면서 많은 심경과 생각의 변화가 있었나 싶긴 했거든요. 어떠셨어요? 설치를 하시면서, 작업에 있어서.

이언제
일단 정말 이 설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요.

이상희
얘요?

김나영
그런 것이었어요?

이언제
네.

김나영
원래는 그럼 저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DP하고 어떤 생각으로?

이언제
그냥 원래는 그리던 그림이었는데 자연 님과 모서리에서 만난다라는 생각을 한 이후로 정말 근데 너무 너무 불안한 거예요. 뭐가 와서 우리가 모서리에서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김나영
만난다는 게 그 의미만이 아니죠? 물리적인 만남만이 아니지요?

이언제
그쵸. 근데 일단 물리적인 만남이 있어야 거기서 비물리적인 얘기들도 나온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어거지로, 그, ‘어거지로’를 취소합니다.

이상희
뭐야. 저런 방식을 쓰다니 비겁해.

이언제
근데 자연 님 거에 최대한 반응할 수 있는 형태를 가져오고 싶었어요.

이언제
그래서 저는 오히려 두 분의 생각이 더 궁금하답니다.
제가 저조차도 잘 모르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상희
저는 지금의 설치에서 얘네가 되게 어떤 건축의 요소를 기반으로 결정된 설치가 좀 있는 것 같다 느껴요. 이렇게 수직성이나 어떤 공간에 그 구조에 기반해서 면으로서 이렇게 탁탁탁 들어오는 그런 것들. 그래서 궁금한 게 모서리로서의 설치를 달성하는 게 중요했던 것이었는지 궁금하고,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설치 개념인 거잖아요.

이언제
맞아요.

이상희
짝꿍 설치가 있어서 개념을 도출한 것인지, 그 개념을 두 사람이 이루어야만 했던 것인지가 궁금하고 그리고 언제 님 작업에서 모듈의 요소도 강하지만 모듈과 건축은 조금 다른 것 같거든요. 또 기존의 작업에서 캔버스랑 미디엄을 통해서 해오던 것이 있고, 그걸 자르고 다시 어떻게 봉제하거나 봉제하지 않고 어떤 식의 형태를 다시 부여하거나 부여하지 않고 이런 것들을 계속해 오고 계셨는데. 그게 모서리에 의해서 기하학적인 것으로서만 이번에 설치된 것 같아서 이번 설치에서 설치의 개념이 중요했는지가 좀 궁금한 것 같아요.

이언제
일단은 저희가 처음에 모서리를 얘기했었는데 이제 여기 와서는 모서리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를 느꼈고요.
저는 사실 이렇게 다 잘라서 가져온 이유는 진짜 어떤 상황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애초에 우리가 써놓은 모서리 텍스트가 저한테는 모서리가 조금 더 중요하거든요.
근데 자연 님께는 모서리가 모서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우리는 재밌었던 거지 사실 자연 님 그림의 모서리가 중요하진 않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와서 실제로 자연 님 그림을 조금 저 모서리에 받치게 대봤는데 가깝게 대봤는데 불안하다 떼야겠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그렇다면 더 이상 모서리에 집착하기보다는 조금 더 우리가 작업 살아날 수 있는 방향으로 설치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 자연 님의 이 그림이 굉장히 신전의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 했거든요.

여신의 이미지이기도 하고 수직적으로 이렇게 흘러내리는 이미지가 사실은 그 신전 같은 데 설치되는 여신 같은 거를 상상을 하셨다고 해서 그렇다면 조금 건축 얘기를 해 주셨던 것처럼 이 제 조각들은 신전의 기둥같이 조금 더 읽히고 쟤네는 조금 더 돌이나 건축 재료처럼 느껴지게 하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 작업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거죠.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 놓아 본 것이고

이상희
그렇게 되는 것이 본인에게 괜찮아요?

이언제
네 그럴 생각으로 만들어 온 거기 때문에 아니 얘는 얘네는 사실 별로 놓고 싶진 않았는데 자연 님께서 좋아하셔서

김나영
그럼 원래 생각하고 있던 언제 님의 작업이 가진 맥락이랑, 지금 조각사적인 부분에서 신전의 기둥으로 읽히게 되는 것은 다른 것이죠?

이언제
다르죠.

김나영
어떻게 달라요?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언제
저는 오래된 것이라는 생각도 안 하고 사실 저한테 얘네가 즐거운 이유는 정말 만졌을 때의 촉감이랑 회화의 재료인 캔버스 저는 그냥 캔버스를 가지고 노는 게 너무 즐거운 것 같거든요.
그래서 캔버스와 프라이머를 이용한다는 거는 그릴 준비를 그림 그릴 준비를 마친 표면을 만든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왁구에 그림 그릴 준비를 다 해놓고 그 표면 자체가 너무 좋은 나머지 조금 과하게 하고 그거를 떼어내서 실제로 뭐 더 이상 회화의 지지체가 아니라 설 수 있는 조각을 만든다든지 아니면 뭐 저런 식으로 벽에서 떨어져 나왔던 것이 다시 벽으로 돌아간다든지 하는 방식들이 저한테는 즐거운 거죠.
근데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설치해서 제가 하기 싫은 방향을 했다는 건 아니고요.
저는 이제 완전히 다른 맥락상에 놓이는 제 작업이 한번 보고 싶기도 했어요.

이언제
그랬을 때 어떻게 읽히는지도 궁금했고.

김나영
그래도 얘네들은 다 모서리에서 시작을 하셨네요.

이언제
이제 여기서는 약간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서 어쨌든 모서리를 차용차용 모서리 없이는 모서리 없이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에 반응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느껴서 한 것 같고 사실 이걸 한 다음에 제 생각을 조금 알려드리자면 점점 느끼는 게 이런 식의 설치는 제 작업과 벽과의 관계 맺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캔버스가 벽에서 떨어져 나왔다가 다시 돌아갈 때 어떤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회화는 벽에 의존적이잖아요.

김나영
근데 현 시대에도 회화가 벽에 의존적인가요?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인가요.

이언제
제가 하는 시도만 봐도 아니긴 한데

김나영
그니까

이언제
근데 이제 미술사적으로 회화는

김나영
벽에 의존적이니까?

이언제
그렇죠 이제 캔버스 자체도 그림 그리는 것의 지지체고 그것이 벽과 이전에는 벽이 사라지는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이제 저는 그거를 다 떼어내서 하나하나 생각을 해보는 중이니까 그게 다시 벽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그 둘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가 제 작업에서는 조금 더 중요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김나영
벽이라는 게 어쨌든 공간이잖아요. 계속 언제님은 저 작업들로는 어떤 공간에 반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조금 더 여기가, 공간에 조금 변칙성 같은 게 있었으면 조금 더 재밌었겠다 본인이.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가 그냥 명확한 직사각형 구조 이니까 뭔가 혜화기지처럼 조금 더 방이 엄청 나눠져 있고 뭔가 좀 그런 어떤 장애물 같은 게 있는 상태에서 얘를 새로 뭔가 다시 해보는 것도 이게 지금 보고 있는 이런 어떤 공간과의 관계 높이가 조금 더 되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이상희
약간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자연 님과 언제 님의 이쪽 설치 외에도 저쪽에 나영 님, 여진 님, 언제 님이 모서리를 가지고 설치한 것도 같이 보면. 모서리가 어쨌거나 접하게 만드는 어떤 기준값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설치를 하는 이렇게 생긴 공간의 모서리라는 것을 설치의 주 개념이 되는 모서리와 일치되는 상태로 모두 합치된 형태로 생각해서 지금의 설치가 결정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러니까 모서리라는 게 내 작업의 모서리가 될 수도 있고 자연 님 회화의 모서리라든가 어떤 캔버스의 모서리일 수도 있는데. 또는 더 개념적인 모서리일 수도 있고, 관람의 차원에서의 모서리일 수도 있는데. 공간의 모서리로 모두가 합치되어 있는 상태에서 디스플레이를 결정한 것 같아서. 그래서 언제 님이 다시 보고 계신다 하는 것도, 지금 저게 벽의 모서리를 가리키고 있는데 스스로의 회화의 모서리를 가리키고 있냐 하면 사람마다 그 점에 대해 조금 보는 게 다를 것 같아요.

김나영
그러게요.

이상희
그래서 저는 짝꿍 설치에서 개념으로서 도출된 모서리에 입각해서 작업들을 봐야 될지 어때야 할지 그게 항상 고민이었어요. 언제 님뿐만 아니라 다른, 그러니까 각자의 미술에 대한 접근법이 너무 다르니까, 각자가 제시한 것에 입각해서 내가 관객으로서 아니면 동료로서 이렇게 보면서 같이 제시된 노선을 따라 이야기를 할 수는 있는데 바깥에서도 봐야 되는 건지 그게 조금 고민되네요.

이상희
언제 님 작업이 아까 언급된 벽에 의존하는 방식을 계속 가지고 가실 수도 있지만, 저 형태 그대로 이 작업과 또 관계 맺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하나의 예시로 들자면요. 어쨌거나 공간의 모서리를 가지고 작업을 보게 하는 거랑 작업의 어떤 부분을 보기 위해서 다른 것을 활용하는 거랑 따져 보면 조금은 결정들이 많이 달라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화에 기반해서 생각해보자면요.

이상희
그리고 되게 우리(지음-상희)한테 침투를 많이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자연 님 작업과 벗어나서 다른 작업과 만나게 됐을 때도 스스로에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김나영
저도 얘기하면서 그냥 이 전체 공간이라는 걸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사실 여기만 봐도 이 안에서도 공간이 형성이 되기는 하는 것이잖아요.
되게 거시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배치해서 형성되는 작은 공간의) 그런 관점으로 조금 접근해도 재밌겠다.

이언제
그거는 이제 제 작업 그러니까 제 작업이 공간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느냐 아니면 제 작업이 더 드러나나야 하는가의 문제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저런 식의 설치는 오히려 제 작업을 들여다본다기보다는 제 작업을 통해서 이 공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약간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해요.
저 밑에 것도 근데 저거는 한 중간 정도 제 작업을 보는 게 한 50% 저 밑에가 이렇게 떠 있다는 거를 또 인식하게 되는 장치일 수도 있고 얘네는 이제 오히려 제 작업을 더 보게 하는 약간 그런 퍼센트로 따졌을 때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상희
제가 좀 마이너할 수도 있지만 반대인 것 같아서요. 반대라는 점이 오히려 쟤네를 더 들여다보고 얘는 그냥 수직의 요소로 받아들여 이 디테일을 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언제
왜요?

이상희
뭔가 저는 벽을 더 강조하기보다는 저렇게 있음으로써 시선이 저 애들을 따라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 안의 요소들을 좀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 왜, 고민하고 있던 펀칭 같은 것도 조금 더 잘 보게 된 것도 있고요. 물론 다른 형태 두 개가 나란히 모서리를 끼고 붙어 있는 것도 있지만. 여기 덩어리에 있는 펀칭이 주는 재미랑 또 다른 식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언제
사실 그렇다면

이상희
근데 얘네가 이제 여신상에 맞춘 건축으로 들어왔을 때는 저거랑 다른 방향이다 이렇게 느껴지는··.

이언제
맞아요.

이상희
슬픈 언제

김나영
왜 이렇게 촉촉해졌어 사람이

이언제
뭐 그런 실험을

이상희
저 이거 한 줄 쓸 거예요.

김나영
나 혼자 열심히 쓰고, (상희는 한 단어로) 이렇게 가오 챙긴다고?

이언제
근데 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아무래도 지금 저런 식의 설치들이 더 부각되는 방향일 것 같아요.
제가 막 퍼센트 같은 걸 얘기한 것도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추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랬을 때 뭔가 바닥 같은 데 놓여 있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근데 실제로 만져지면서 동시에 그냥 건축재처럼 사용되는 그 정도의 상태를 조금 추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언제
시간이 어떻게 되죠?

이상희
12시 반.

이언제
저는 안 가도 돼요.

김나영
누가 가야 돼? 상희가 가야 돼? 잘 가. 어차피 오늘만 만날 것이 아니니까

이언제
거 한 5분이라도 하고 가죠

김나영
5분 가지고 근데 뭐가 돼?

이언제
5분 동안 상희 님 얘기 들어보고 그다음에 저랑 같이 10분.

김나영
근데 저는 지금 여기 있는 조각인 애들이랑 벽에 걸려 있는 애들이랑 시작한 맥락이 조금 달라서.. 뭐 궁금하신 거 있으셨어요?

이언제
저희가 지금 이 상태에서 생각을 해보는 게 더 좋으세요?
아니면 좀 따로따로 생각을 해보는 게 더 좋으세요?

김나영
따로따로

이언제
그러니까 지금 나영 님께 다른 시작점들이 있다고 했잖아요.
근데 함께 놓여 있는 현 상황을 보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조금 더 작업 개별적으로 생각을 해볼까요

김나영
편하신 대로 전 다 좋아요.

이상희
다른 시작점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기존의 규격이 있고 나영 님이 뭔가를 함으로써 그것이 변주되는 형태가 되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계단도 나영 님이 정해놓은 크기는 아닌 거잖아요. 애시당초에.

김나영
어떤 계단이요?

이상희
그러니까 이 작업이 참조하는 계단을, 그냥 원하시는 대로 이렇게 캔버스 호 고르듯이 정한 게 아니고 어떤 계단이 있고 그거를 바탕으로 하신 거 아니에요?

김나영
이 계단의 어떤 뉘앙스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상희
이 작업에 들어오게 된 계단이 캔버스 호 짜듯이 작업하는 작가가 원하는 사이즈의 계단을 한 게 아니고 어떤 구체적인 계단 스펙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에요.

김나영
근데 사실 구체적인 계단 스펙은 얘 말고, 실제로 제가 ‘모사된 계단’이라는 계단을 만든 작업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이 원래는 Hall1에 있던 계단에 그것을 모두 실측을 해서 그냥 원래 없는 곳에 하나의 계단을 대치하는 형태로 세운 작업이 하나가 있었고요. 걔랑은 또 얘가 또 맥락이 다른데. 이것의 경우에는 계단이라는 얘기가 들어오게 된 계기가 그냥 계단에 대한 제 생각에서 출발을 했던 것이고, 조금 되게 맹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냥 계속 끝없이 계단을 오르는 이미지를 계속 상상을 하면서 얘(작업)를 그렸던 것 같아요

김나영
이것도 다른 얘기긴 하지만, 그러면서 얘(작업)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제가 생각보다 그리거나 완성하는 행위도 당연히 중요하긴 하겠지만, 그것보다 제가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을 했던 게 만드는 공정이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작업은 일반적인 규격이 있는 애들인데, 규격이 있는 애들이 다시 쪼개지고, 실제로 합판이나 각재들은 원래 함께 붙어 있지 않은 애들이니까요, 나눠져 있던 것을 내가 조립하고 붙여서 분리되어 있던 것들이 하나로 만들어지는 것에 오히려 더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얘(벽에 붙은 나무 계단 작업) 를 만들면서는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규격적인 것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작업에서 중요해졌었던 것 같아요. 얘(스펀지 조각 작업)를 할 때는 오히려 원래 있었던 것을 떼어내서 내부를 드러내는 것에 조금 더 집중을 했던 작업이고

이상희
내부에 대한 것은 계속 가져가는 건가요?

김나영
네 사라질 수 있지만 지금은 그래요. 입체적인 무언가를 만들 때 제가 어떤 골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요.

이언제
지금 이 표면은 어떤 식으로 하신 거예요?

김나영
이거 오쿠메합판에 스테인 칠을 네 번 정도 했어요.

이언제
그럼 이 질감이 이 느낌이 지금 스테인 칠에서만 나오는 거예요?

김나영
네 이거는 그래요

이언제
원래는 이런 질감은 나지 않아요?

김나영
네. 상희 님 그리고 가셔도 돼요. 괜찮아요.
저희 얘기하다 갈게요. 다음에 또 얘기해요.

이언제
조심히 가세요.

이상희
아니, 안 돼 안 돼 안 돼. 제가 써야 된단 말이에요. 이거 올라가는 거 아니에요?

이언제
눈물 그리고 있어

이상희
종이 이미지 올라가는 거 아니야?

김나영
그렇긴 해.

이상희
나영 님에게 드리겠어요.

김나영
이거 지워줘요? 언제 입 삐죽 나온 거 봐. 표면이 궁금하세요?

이언제
그냥 제가 본 적이 없는 거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이 색깔을 좀 맞추려고 하신 건가 하는 느낌도 들고

김나영
참고로 얘는 프로토타입이에요. 완성된 게 아닌 걸 제가 들고 온 것이에요.

이언제
그러면 실제로는 어떻게

김나영
실제로는 지금 저 방식이랑 이 방식 중에 제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언제
얘네가 방식이 달라요?

김나영
네. 참고로 지금 저 형상들은 얘(스펀지 조각 작업)를 만들면서 버려진 것을 엮어서 하나로 합친 것이고, 원래는 다 나눠져 있고요. 이것도 만져보시면 다를 텐데 얘는 라쳇 벨트로 조였어요.
이건 제스모나이트 물을 들인 거고 그 위에다가. 이렇게.

이언제
제스모나이트 물이 뭐에요?

김나영
제스모나이트를 주로 캐스팅 할 때 쓰잖아요.
근데 거기에 스펀지를 이렇게 꾹꾹꾹 짜서 안으로 침투시킨 거예요.
첫번째는 석고물을 그렇게 만든 것이고

이언제
만져도 돼요?

김나영
네. 얘(제스모나이트 스펀지 조각)는 좀 단단한데, 얘(석고 스펀지 조각)는 좀 되게 말랑하거든요.

이언제
고무는 얘네끼리 묶는 데서 사용되는 거죠.

김나영
네. 다 실험에 가깝긴 해요. 제가 들고 온 모든 것들이…
쟤는 라쳇 벨트 얘는 고무 얘는 또 와이어 줄이거든요.
쟤가 석고가 조금 더 단단하게 (스며)들은 것이고 얘는 좀 약간 약하게 (스며)들은? 조금 누르셔도 돼요.

이언제
저는 석고물이 재밌는 것 같아요. 석고상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저 특히 좌대 위에 놓인 쟤랑 쟤는 뭔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블이나 석고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는 것 같은데, 실제로 석고를 썼다는 게 저한테는. 왜냐하면 석고상처럼 생각하지만 그런 재료로 느껴지진 않잖아요.

김나영
스펀지가 있으니까?

이언제
맞아요. 스펀지가 인식이 되는데 석고상이라고 우길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재밌어지는 것 같아요.

김나영
그런 부분들을 저도 흥미로워 하는 것 같기는 해요.
그러니까 전통적인 맥락을 가진 재료들이 있고, 사실 나무도 그러하고. 근데 거기에 조금 다른 질료들이 들어와서 충돌할 때 저는 흥미를 느끼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저 아이(벽에 건 나무 페인트 작업)가 조금 다르다고 느낀 것 같기는 해요. 대체로 나무랑 스펀지가 충돌하거나, 스펀지와 석고가 충돌하거나 하면서 어떤 질료들이 계속해서 충돌하는데, 저 친구(벽에 건 나무 페인트 작업)는 목재로만 이루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작업 주제와 방법론 관련한 부분에서 이런 얘기도 좀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되게 전통적으로 작업한다.

이언제
이쪽은 유화예요?

김나영
아니요, 페인트랑 아크릴이에요.

이언제
여기(전시장)에서 저희가 썼던 수성 페인트랑

김나영
동일해요.

이언제
걔네는 조색을 해요. 아니면…

김나영
조색을 해요. 저 개인 설치할 때도 조색을 한번 하려고요.
나와서 하실래요?

이언제
해야죠. 근데 저거는 회화라고 생각하세요? 저 회화 중요하지 않은가요?

김나영
네. 그리고, 제가 요즘 회화랑 조각이 불투명한 것 같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저 아이(벽에 걸린 나무 페인트 작업)를 회화라고 하면 사실 벽에 걸렸으니까 회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회화라고 하기엔 지지체를 만드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회화의 지지체를 만드는 방식이랑은 좀 궤가 달랐고, 그 위에 붙여진 것들도 회화 작업 과정보다는 조각에 가깝다, 조각이라고 하기도 살짝 뭐하고, 어떤 하나의 입체를 만드는 것에 가깝기는 했거든요. 사실 회화라고 말을 붙이면 붙일 수 있지만, 쟤네를 만드는 공정 자체는 무대를 만들 때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벽을 만드는 방법에 오히려 가까웠다고 생각을 하기는 해요.

이언제
근데 사실 이 논의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기술적으로는 그러셨을 수 있어도 저거는 뭔가 그림을 그리고 싶으셨다는 욕망이 엄청 크게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김나영
네 제가 그거(그리기의 욕망)가 조금 커요.

이언제
그 안에 실제로 이 페인트칠을 한 부분보다도 저 나무를 이용해서 나눠놓은 구역들이나 그 전체 생김새 자체가 이미 약간 조금은 더 평면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거에 관심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고

김나영
실제로 그러해요. 왜냐하면 저는 지금도 제 안이 혼란한게, 어떤 제 주제와 이어서 작업적인 맥락을 가지고 가면은 사실 조각이나 설치를 하는 게 맞다고 느끼긴 하거든요. 제 작업적인 맥락이라 함은 어떤 사회적 규범이나, 퀴어 내에서의 어떤 TPO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에 가까운데, 더 파고들어 보자면 퀴어라서, 퀴어 정체성을 제가 작업의 주제로 가지고 왔기 때문에 요구받는 퀴어함이라는 게 있다고 느끼거든요.

김나영
예를 들어 섹슈얼리티라든지 게이 미술의 범주 안에서 보여지는 어떤 특성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것과 조금 다른 것이 느껴지면 사람들이 그걸 퀴어함이라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퀴어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런 것들을 요구받는가 싶기도 하고, 그것이 온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조금 있고요. 퀴어함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에 대한 의문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벗어나면 더 작업이 규범적인 뉘앙스를 띠게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퀴어함이랑 규범적인 것이 충돌하는 지점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그렇게 돼서 사실 저 움직이는 조각 같은 것이 나오는 것도 공간 안에서 어떤 좌표를 부여받는 개인이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타인이 정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수동적인 선택이었든 능동적인 선택이었든 어쨌든 위치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저 조각이 생겨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만들 수밖에 없게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만들고 싶었고. 근데 그것과 별개로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제가 있어요.

이언제
그래서 참 신기한 포인트는 오히려 저 그림은 뭔가 딱 봤을 때 대작이다 이런 느낌이 들거든요. 만듦새나 약간 여러 가지를 따졌을 때 마감이 잘 되고 약간 이런 이런 느낌이 든단 말이야 형태가 살짝 퀴어한가라고 따지고 보면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별로… 근데 얘네 지금 이번에 새로 갖고 오신 것들은 확실히 뭔가 이상함이 있고 어떤 충돌이 있다는 게 엄청 설득이 되는 것 같아요.
이거는 뭔가 사실 저는 지금 나영 님과 작업을 해 본 건 아니지만 이거 만들고 하면서 오히려 조금 더 사람으로 봐왔잖아요. 그랬을 때 이거를 갖고 오셨을 때 저는 좀 놀랐거든요.

김나영
왜요?

이언제
조금 더 조금 더 완성돼 보이는 재료들 그리고 이렇게 고무 밴드나 와이어가 드러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마감을 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나영
네 맞아요. 원래는 제가 그런 선택을 많이 하는데 최대한 거기서 멀어지려고 노력한 결과이기는 해요.
저 작업을 했을 당시에는 못 견뎌하는 것에 가까웠거든요. 그러니까 약간 이러한 상태(미완성된 상태)를요…
저도 제 안에서 미술에 대한 변화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완성도라는 것이 허상이라고 지금은 생각을 하는데, 그러니까 사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완성도가 어떤 미술에서의 완성도가 아니라 조금 더 상업적인 부분에서 기성품의 완성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조금 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 풀어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언제
근데 이런 시도가 일단 실제로 좀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어떤 퀴어함과 그 규범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싶다고 하셨을 때 조금 더 와닿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일단 지금 얘기를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이제 나영 님이 정확히 어떤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퀴어 미술 자체도 범주가 조금 크게 느껴지거든요. 우리가 아는 조금 더 굉장히 약간 킹키한 부류의 미술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캠프하다는 말을 많이 썼었는데 한동안 되게 캠프한 장르도 있고 또 그거에 비해서 이거 근데 녹음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이 말이

김나영
그냥 말해 그냥

이언제
그러니까 저는 게이 미술과 레즈비언 미술은 제가 잘 알지는 못 하지만 다를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에요.
제 머릿속에 드는 것만 생각을 했을 때는 색깔이 많고 약간 캠프 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고 더 시니컬한 태도라든지 정돈된 상태의 것도 있을 수 있고 다 다를 수도 있어.
근데 뭔가 애초에 퀴어 미술이라는 게 제가 느끼기에는 조금 큰 범주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거고 이제 거기 안에 나영 님을 이렇게 딱 그 위치를 잡고자 했을 때 그게

김나영
저는 사실 그 위치를 못 잡아서 그렇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성정체성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저의 경우를 예시로 들자면, 저는 남성과 여성 전부 다 상관없고요. 그러니까, 제가 보고 있는 사람의 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저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성별보다는 사람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리고 지금 만나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그 사람이 ‘여성’인 것도 저에게는 대단히 중요하지 않아요. 섹슈얼리티에 관한 것도 무성애에 가깝고, 그런 지점들이 있어서 사실 정체성을 정확하게 얘기하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까 성애적인 부분에서도, 그 부분이 아니어도, 퀴어 안에서 범주가 있다고 했을 때 저는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디에도 내가 안착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언제
왜 그렇게 좋죠? 그 말이

김나영
그래서 얘가 돌아다니는 걸 생각했던 거예요. 어디에도 서 있을 수 있지만 어디에서도 안착하지 못하는 상태로서요. 그래서 범주에 대해서 좀 그렇다고 느낀 것도 있고… 사실 퀴어 미술에서 범주가 나눠지는 것도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기는 해요.

이언제
그러면 퀴어 자체가 애초에 퀴어라는 것 이 어쩌면 범주에서 벗어난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나요.

김나영
저는 그렇다고 생각을 하긴, 잠깐만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퀴어함이라는 것은 오히려 언제님이 얘기한 그 범주에서 벗어남과 유사하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것은 작가의 어떤 정체성이 퀴어라고 퀴어미술이라고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얘기하신 대로 규범적인 것이나 미술 안에서 퀴어한 부분을 찾아내서 그것을 조금 더 작업과 연결시켰을 때, 작업이, 그 과정이 퀴어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 같고. 그 작업 자체가 퀴어 미술 안 범주의 어떤 특성을 띠고 있다고 퀴어하다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서 퀴어가 들어왔을 때 퀴어 미술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언제
이게 장르로서의 퀴어 미술이, 지금까지 보여온 어떤 특징들이 이렇게 드러났을 때 퀴어 미술로 우리가 인식을 하게 되는 퀴어 미술이 있는 것 같고 이제 그런 특징들과 상관없이 퀴어가 만들었다는 퀴어 미술이다라는, 나영 님께서는 오히려 두 번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시는 걸까요?

김나영
아니요. 그러니까 두 번째로 말한 것도 퀴어가 만들면 퀴어 미술이라고 하신 거잖아요. 근데 그거랑은 좀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언제 님이 말씀해 주신 이 퀴어 미술의 특성을 자신의 작업에 있어서 수단으로 일부러 쓰는 경우도 있고, 그럼 그것을 이제 퀴어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런 생각도 있고. 그래서 일단 그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이언제
그러면 사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영 님께서 어떤 범주에도 속하고, 퀴어 미술과 규범 사이에서 이렇게 어느 정도 중간지대에 속하고 싶다고 하시는 거는 되게 그 자체로 저한테는 되게 의미 있는 얘기처럼 들리는 것 같아요. 그 방식이

이언제
그걸 실제로 구현하려면 애초에 충돌이 필요한 걸까요? 이 재료들 자체에서

김나영
충돌이 있으면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고는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더 사실 설명적이라고 생각을 하긴 했거든요. 읽히게 만드는? 그래서 선택을 한 것 같기는 해요.

이언제
그게 중요하세요?

김나영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읽히는 것보다 제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게 중요했는데, 최근에는 어느 정도 열어두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어쨌든 (내 작업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라서, 그 어중간한 지대가 있다는 거. 그게 사실 읽히지 않으면… 사실 읽히지는 않더라도 거기까지 들어올 수 있는 어떤 구멍이 없으면 무용하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것이 전시를 이루는 주제적으로는 그러하고, 또 작업 안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언제
근데 정말 나영 님이 퀴어고 이런 걸 다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얘네를 보면 그냥 그냥 제가 이걸 봤다고 하면 뭔가 석고상인 척을 하는 석고상이 아닌 실제로 우리가 이렇게 단단한 거를 만들기 위해 쓰지 않는 말랑한 재료가 단단한 척을 하고 있고 만져봤었더니 실제로 단단하다 약간 중간지대로 빠져드는 것 같긴 해요. 그거는 조각사적인 얘기가 아니더라도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김나영
그렇다면 제가 실험을 좀 잘했네요.

이언제
근데 저는 범주라는 게 참 나를 날카롭게 만들어 주면서도 내가 갇히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거는 굉장히 다른 얘기긴 하지만 그럼 제가 미국에서 할 때는 동양인 작가가 되는 거고, 해외에서 건너온 이민자가 되는 거고 자연스럽게 생기는 여러 범주들이 있는데

김나영
그쵸, 왜냐면은 사실 되게 그것 말고도 다양한 범주들이 되게 많지 않으세요?
안에 엄청나게 많은데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되게 납작하게 사람을 보게 되는 부분들이 생기잖아요. 거기서 꺼림칙함을 느끼시는 게 아닐까요?

이언제
맞아요. 그리고 어느 한 범주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좀 들었던 것 같아요.
언어로 쳤을 때 저는 영어에서도 애매하게 자유롭고, 또 한국에서도 애매하게 자유롭고 뭔가 그 두 언어를 다 알고 있다는 점에서 제가 속해버리는 중간지대가 있거든요.
그래서 약간 저는 그 중간지대에 속하는 방식이 사실 한국어도 보편적인 것이고, 영어라는 것도 보편적인 것인 제가 이 둘 사이에 언어 유희를 만들어내면 네 그 언어 유희 자체는 굉장히 개인적인 것으로 이 사이에 저를 찍을 수 있는 거잖아요.
뭔가 이런 방식으로라도 해결을 하고

김나영
그런 지점에서 재밌는 것 같은데요.

이언제
그래서 나영 님의 고민이 약간 좀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언제
근데 지금 딱 드는 생각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고 중간에 있기 위해서는 어쨌든 개인적인 무언가가 없이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김나영
맞아요. 그 어중간한 상태와 어떤 이거인 척을 하는 것에 있어서 얘기를 조금 더 하면 좋겠는데, 제가 다음 기회에 살짝 어이없는 얘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이언제
좋아요. ㅋㅋ 뭘까요?

검색